어제 내 고향 대관령에 눈이 내렸다. 잠시 내리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니라, 진부에서 소금강 쪽으로 넘어가는 진고개길이 4월 마지막 폭설로 차량운행이 전면 통제되었다고 한다.그러면 나는 정말 신이 난다. 봄눈에 대한 내 그리움과 흥분은 그렇다. 매년 '그 해의 첫눈이 언제 내릴까' 하는 것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10월 하순에 내리든 11월 초순에 내리든 온 듯 만 듯 잠시 나부끼다 사라지는 첫눈에 대해서는 나 역시 그 눈의 인색함 만큼이나 냉담하다.
매년 내가 마음속으로 기다리는 눈은 '5월의 눈'이다. 그 해 마지막 눈이 늦으면 늦을수록 광적으로 흥분하고 경배하는 '5월 눈'의 신도이다. 어느 해인가 배추농사를 지으러 올라간 대관령에서 5월의 눈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향로봉 아래에서 군대생활하던 시절,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며 피어난 철쭉을 단 한 순간에 그대로 하얗게 덮어버리던 5월의 폭설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곤 아직 너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매년 기도하듯 기다리는데도 오지 않았다. 어제 내린 4월의 끝눈아. 며칠 후 한 번 더 그렇게 내려다오. 그러면 그날 만사 제쳐놓고 나 대관령으로 가 너를 맞으리.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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