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참사의 현장 용천과 신의주, 단둥 일대에는 26일 밤새 억수 같은 비가 퍼부었다.용천의 이재민들은 배고픔과 영하의 체감온도로 추위에 떨며 날밤을 지샜을 것이다. 다행히 27일 아침에는 햇빛이 눈 부실 정도로 날이 맑게 개 한 가닥 위안을 주었다.
신의주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중국의 국경도시 단둥(丹東)은 일상적으로 평온하다. 폭발 사고 6일째인 27일 북으로 통하는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는 이날 구호물품과 일반화물을 실은 트럭과 승용차들이 간간이 왕래했고 압록강에는 중국 유람선이 수없이 떠 있었다.
이날 단둥에는 가족을 잃고 슬픔 속에 돌아온 사람, 부상한 가족을 문안하고 안도 속에 돌아온 화교들이 참혹하고 비참한 현장의 소식을 전했다.
단둥역과 중조우의교 앞에는 용천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전하려는 한국의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전달방법을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한국인은 북한 당국이 국경통과를 허용하지 않아 구호품의 직접 전달이 불가능하다. 베이징(北京)에 본부를 둔 조선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라는 생소한 단체를 통해 간신히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중국의 구호품을 실은 대형 트럭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증송'이라고 쓴 대형 플래카드를 걸고 줄지어 북한 땅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의 구호품을 단둥에서 육로로 40분 만에 보낼 수 있는 신의주나 용암포구를 놔두고 현장서 150∼200㎞나 떨어진 남포로 보내라는 북한 당국의 처사는 이해하기 어렵다. 같은 동포인 남한 사람은 막히고 중국 사람은 자유롭게 드나드는 중조우의교를 바라보며 분단의 현실을 새삼 확인했다. 강 건너 20㎞도 채 안 되는 용천 땅의 참사 현장을 풍문과 전언에만 매달려 취재하는 기자의 심정도 착잡하기만 했다.
/송대수 베이징 특파원/단둥에서 ds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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