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과 종묘 주변은 같은 서울이면서도 전혀 다른 풍경이 있다. 국밥을 1,500∼2,500원에 사먹을 수 있고 2,000원짜리 백반도 있다. 붕어빵이나 호떡도 다른 곳의 반값이다. 붕어빵 1,000원어치로 요기 겸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장면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좌판의 주인은 십중팔구 노인들이고 물건 역시 1만원짜리 구두에서 5,000원짜리 점퍼 등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을 위한 것들이다. 구두수선 노인들도 유난히 많다. 40∼50대가 아니더라도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미래의 자신을 보는 듯 가슴이 무거워진다.■ 고령화에도 속도가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만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이 7% 이상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고령사회(고령인구비율 14% 이상)는 2019년, 초고령사회(고령인구비율 20% 이상)는 2026년에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까지 19년,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까지 7년 걸린다는 얘기다. 일본 프랑스 미국보다 고령화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고령화가 전광석화(電光石火)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최근엔 명퇴 시기가 앞당겨져 가을이 오기도 전에 나무를 떠나야 하는 푸른 낙엽 같은 '젊은 노인'까지 가세하고 있다.
■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오늘을 있게 한 어제의 주인공들은 이미 공경대상에서 밀려나 '골칫거리' 취급을 받고 있다. 정부도 노인 배려 차원보다는 '놀고 먹는' 노인층이 두터워지는 데서 생기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을 내놓는다. 노인증가는 곧 노동인구 감소→저축률 하락→재정악화→국가성장 저해 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정년 연장이나 임금 피크제 같은 제도도 결국 청장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우리도 일본처럼 노인을 비용이 싼 후진국 요양원에 보내는 것을 검토하는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 보건복지부와 한국노인과학학술단체연합회가 매년 11월 85세 이상 노인들 중에서 건강하고 사회활동이 활발해 노후생활의 모범이 되는 '멋진 노인'을 선발해오고 있다.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면 만족할 수 있는 노후생활은 외부의 도움보다는 스스로 하기에 달렸음을 일깨워준다. 정부나 사회 어느 곳에서도 노인에게 온정을 베풀 여유가 없다.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지 않으면서, 멋지진 않더라도 무난한 노년을 보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다. 최근 늘어나는 노인들의 자살은 젊음을 자랑하는 청장년들이 머지않아 마주칠 자신들의 문제다.
/방민준 논설위원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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