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언론이 보내온 북한 용천의 사고 현장 모습은 처참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낙후된 동네 모습, 전쟁터와 같은 파괴된 집과 학교, 망연자실한 주민들, 초라한 복구장비와 원시적 운반수단…. 과연 이곳이 한때 케임브리지대 경제학자 조안 로빈슨이 경제기적을 이룩했다고 칭송한 나라인가?비참한 사고 현장을 보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그곳을 지원해야겠다는 박애주의와 온정의 감정이 솟아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최대의 희생자라는 점은 더욱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 때문에 식량지원에 무심했던 여러 국가들과 자국민 납치문제로 북한과 소원했던 일본도 재난에 대한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북한도 부인 일변도로 나가던 과거의 태도와는 달리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신속하게 용천 사고를 보도하였다.
한국에서 며칠동안 계속해서 TV 첫 뉴스와 신문의 1면을 북한의 사회기사가 장식하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 배경에는 용천 참사와 관련하여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북한을 지원하고 싶어 하는 한국민의 온정이 담겨있다. 한국에서는 개인과 정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회단체와 종교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려 하고 있다. 정치권도 보수와 진보의 틀을 벗어나 북한지원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북한지원 열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한국이 제안한 긴급 구호물자의 육로를 통한 지원을 거부하고 남북한 구호 회담을 통해 지원방식을 결정하자고 알려왔다. 개성 회담의 결과가 어떤 결론을 낼지는 모르나 이 같은 북한의 태도는 실망스럽다.
당장 의료품과 의료 인력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왜 북한은 한국의 신속한 지원을 간접적으로 거부하고 있는가? 북한이 계산하는 한국의 경제지원보다 더 큰 정치적 손실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개방에 대한 두려움과 자존심의 상처일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북한의 태도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북한도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세계와 고립된 채 폐쇄체제를 유지하면서 힘찬 경제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상적인 국가도 용천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대형 사고를 겪으면 국가운영 전반에 큰 문제를 안게 된다. 하물며 북한처럼 경제가 총체적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충격의 강도는 더욱 클 것이다. 북한은 7·1 경제개선조치를 시행하여 경제의 정상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제는 기대와는 달리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외부의 지원을 통해 북한 경제가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경제는 내생적 요인보다는 외생적 요인에 더욱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경제가 회생할 해법은 자명하다.
국제사회는 용천 참사와 관련하여 온정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북한은 이제 갈림길에 서있다. 비극적 참사와 함께 찾아온 국제사회와의 교류협력의 기회를 과거처럼 허무하게 날릴 것인가? 아니면 이를 기회로 삼아 도약을 이룩할 것인가? 정치적 사건의 궤적에는 흔히 전환점이 있다고 한다.
이제야말로 그간 여러 제약으로 이루지 못한 개방과 경제적 도약을 기대해 볼 만한 시점이다. 북한이 피해지역에 대한 조사를 외국과 협력하여 수행하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는 것이 용천에서 발생한 재난을 수습하고, 이를 기회로 국제교류를 넓히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하나 바라는 점은 향후 용천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유사한 재해를 방지하고 수습하기 위해 남북한 상호 재난에 대비한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다. 용천사태를 통해 북한의 국제사회와의 교류에 대한 태도가 전향적으로 변하고 남북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양운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