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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불멸의 이순신" 주연 김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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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 "불멸의 이순신" 주연 김명민

입력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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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길 떠나며 어머님 영전에 하직하고 울며 부르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 같은 사정 또 어디 있으랴.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전란이 한창이던 정유년(1597년) 4월 19일 이순신은 모친상을 당한 비통한 심경을 난중일기에 그렇게 적고 있다. 영웅이라는 말로는 모자라 그 앞에 성(聖)이나 불세출, 구국 같은 단어가 따라붙는 한 인간의 내면은 알고 보면 홀로 시시각각 무너져 내렸다.

8월 14일부터 방영되는 KBS 1TV '불멸의 이순신'은 연출을 맡은 이성주 PD의 표현대로 '충무공의 생에 덧칠된 화장기를 지우고 맨 얼굴을 드려내려'는 100부작 대하 드라마이다. 이 문제적 드라마의 주인공, 이순신 역은 톱 스타라는 이병헌이나 정준호 대신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하는 건 처음"이라는 탤런트 김명민(32)에게 돌아갔다.

전북 부안 세트장에서 만난 김명민은 예상 밖이었다. 미늘 달린 두석린(豆錫鱗·놋쇠 미늘을 연결해 허리까지 내려오는 조선시대 갑옷)을 차려 입고 한 손에 장검을 든 채 사진 촬영에 응하는 모습이 퍽이나 당당해 보였다.

"사극은 저랑 거리가 멀다고 여겼어요. 상투 틀고 갑옷까지 입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정말 안 어울릴 것 같았는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낫네요."

22일 첫 촬영에 들어가기 전 현충사에 들러 "충무공 영정 앞에서 눈을 맞추며 '제 마음을 드리려 한다'고 고했다"는 그는 "얼떨떨하고 떨린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김명민의 그런 감정 상태는 실은 배역을 제안받았던 3일부터 계속된 것이었다. "처음엔 거짓말 하는 줄 알았어요. 극비라는 말을 다섯 번이나 듣고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진 매니저한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죠." 이성주 PD를 만난 자리에서 "결정할 시간을 달라"며 버티던 그는 집에 돌아와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하겠다고 해야 하는가"라며 후회했다. 아내가 병원에서 아들을 낳은 식목일에 이 PD에게서 캐스팅 확정을 알리는 최후통첩이 날아들었다.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하는 1년 간이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스타의 길을 걷는 젊은 연기자라면 누가 사극 찍느라 1년 동안 섬에 처 박혀 있으려고 하겠어요. 하지만 저는 배우의 길을 가고자 하니까요."

"나를 뭘 보고 캐스팅 했을까 지금도 반문한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그도 무과에 낙제해 서른 한 살의 늦은 나이에 출사했던 이순신처럼 긴 무명 시절을 견뎠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1996년 SBS 공채탤런트 6기로 뽑힌 그는 수 많은 드라마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잘못은 젊은 스타배우가 하고 욕은 길 한 복판에서 자신이 듣는 '수모'를 당했다. 가까스로 캐스팅됐지만 촬영 당일 갑자기 출연이 무산되는 불운도 경험했다. "그때 매사에 심하게 좋아하지도, 심하게 실망하지도 않는 법을 배웠죠."

그 뒤 영화 '소름'과 드라마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 얼굴을 알린 김명민은 얼마전 종영한 KBS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를 통해 자기 안에 숨어 있던 빛을 발했다. 친구를 실수로 죽인 뒤 죄책감에 시달리며 인생을 탕진하다 결국 자기가 죽인 친구의 여동생과 사랑에 빠지는 장인철 역을 모자라지 않게 해냈다.

"노희경, 고두심, 배종옥…. 이름만 들어도 저를 긴장시키는 사람이 많아서 죽기 살기로 했어요. 잘 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살아 남을 수 없었으니까요. 행복한 가족 이야기와 장인철의 얘기가 따로 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점차 나아 지더군요."

비극을 예고하는 숙명 앞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선명하게 시청자들에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는 '검증된 카드'일지 모른다. "캐스팅된 바로 그날 서점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사서 다 읽었고 요즘도 다시 보고 있어요. 읽으면 읽을수록 '적의 칼'과 '임금의 칼'에 동시에 맞서 싸워야 했던 이순신의 비애가 느껴져 가슴이 아파 오더군요." 이제 김명민이 신화 같은 업적 뒤에 숨어 있는 인간 이순신의 아픔과 갈등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큰 그릇'인가를 지켜볼 일만 남았다.

/부안=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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