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으로 대통령제 하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요한 현상은 분점 정부이다. 즉 우리가 여소야대라고 부르는 것으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다른 정당이 차지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도 1960년대 이후 이 같은 현상이 계속 나타났고, 우리도 87년 민주화 이후 자주 목격해 왔다.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탄핵풍 덕으로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둠으로써 오랜만에 분점 정부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소야대와 분점 정부의 시대가 끝나자 그 동안 노무현 정부의 개혁 부진에 실망해 온 개혁세력은 이제 본격적인 개혁을 시작하게 됐다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반대로 기득권 세력은 노 대통령이 국회까지 장악했으니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는 우려로 불안해 하고 있다.
지난 1년간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데에는 한나라당의 발목잡기가 적지 않은 몫을 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 1년간 한나라당은 심심하면 낡은 색깔론으로 노무현 정부에 시비를 걸었고 김두관 장관 해임 건의, 감사원장 인준 거부 등 인사 문제를 중심으로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아 왔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발목잡기는, 그 원인은 상당 부분 노 대통령이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민주당과 공조한 노 대통령 탄핵으로 절정에 이르렀다가 국민의 심판을 받은 바 있다. 이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회까지 장악한 노무현 정부 2기에 기대를 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기대처럼 노 대통령이 집착해 온 언론 개혁 등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다. 또 기득권 세력의 불안은 상당 부분 불필요한 기우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이런 저런 발목잡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1년간 노무현 정부와 한나라당은 협력 관계가 기본 골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대야소가 됐다고 달라질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 공조를 두고 노 대통령 지지세력들은 두 당의 첫 자를 따 '한민련'이니 '한민당'이니 하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어법을 빌린다면 노무현 정부의 지난 1년은 외형상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한민련'이 아니라 '한노련', 즉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부의 연합을 특징으로 한다. 이라크 파병과 한심한 집시법 개악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사안들의 경우 시민단체와 개혁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한나라당의 지지에 기초해, 즉 한노련을 통해, 그리고 노 대통령이 개혁하려는 소위 수구언론들의 지지를 받으며 관철시켰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적지 않은 의원들은 오히려 반대표를 던졌다. 다만 노동 문제의 경우 노 정권이 처음에는 개혁적 노선을 추구했고 한나라당과 수구언론이 발목을 잡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차 철도 파업 이후는 노 대통령의 입장이 표변해 사실상 이들의 입장으로 수렴해 버렸다. 대북 정책도 대북 송금 특검으로 상징되는 한나라당의 발목잡기가 있었다. 그러나 대북 정책이 정체되어 있는 이유는 한나라당 때문이라기보다는 미국의 강경론 때문이며 김대중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도 일조를 했다. 또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실정이자 반개혁적 정책인 부안 핵 폐기장 추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도 한나라당과 아무 상관이 없고 노무현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들이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지난 1년처럼 한나라당과의 한노련을 통해 반개혁적 정책들을 밀고 나갈 것인지 아니면 민주노동당과의 연합, 즉 노노련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 나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판가름할 가장 중요한 시금석은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이다. 시민단체와 다수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 추가 파병을 강행한다면 이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훼손된 한노련을 복원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노련인가, 노노련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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