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영화 '제3의 사나이'에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비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등장인물의 어투가 꽤 냉소적이다. "이탈리아는 보르지아 가(家) 아래서 30년간 전쟁·테러·살인·유혈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르네상스를 탄생시켰다. 스위스는 박애주의 하에서 500년 동안 민주주의와 평화를 누려왔다. 그래서 무엇을 만들어 냈는가? 오호, 시계!"예술지상주의적 편애가 묻어 있는 말이기는 하다. 르네상스가 박애주의, 평화 등과 짝 지어지지 않은 역사도 야속하다. 그러나 예술의 발전에는 후견인이 필요하고, 격동의 시대가 예술성장 촉진제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보르지아는 메디치와 함께 이탈리아 문화예술을 후원한 권세가였다.
시계와 그림 중 어느 것이 역사발전에 더 기여했는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물을 수밖에 없다. 궁핍한 시대와 풍요로운 시대 중, 어느 쪽이 더 문화예술을 아름답게 꽃피게 하는가. 한쪽에서는 현재를 '위기'라고 외쳐도, 지금은 전후(戰後)의 가장 민주적이고 풍요로운 시기다. 반면, 예술에서는 생명력을 잃어가는 조락의 시기다. 물질적 풍요와 문화예술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이율배반의 강이 있다.
화랑 대표가 들려준 서글픈 얘기다. 한 미술애호가가 얼마 전 아들을 결혼 시켰다. 분가하는 아들 내외에게 소장품 중 세 점을 골라 주었다. 뜻밖에, 아들은 '됐으니, 그냥 두고 보시라'고 극구 사양했다. 아버지는 애써 수집한 그림을 주지 못했다. 충격이었다. "도대체 아들은 왜 사양했대요?" "아들은 그림을 거추장스러워 한 거지요." "아들은 뭘 좋아하는데요." "멋진 실내 인테리어와 큰 평면TV, 좋은 오디오 시스템 등이죠. 요즘은 예술품보다는 소위 '명품'을 더 좋아하거든요."
외형적 풍요를 타고 명품 산업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명품에 대한 과잉선호가 예술의 비옥한 대지를 잠식하고 있다. 값비싸고 화려해 보이는 상업주의적 외양이 내면적 가치에 우선하는, 가치전도의 시대에 당도해 있는 것이다. 부박한 물신숭배 풍조 속에, 예술인들은 더 궁핍해지고 있다. 그 화랑은 지난 해 고작 열 점 정도의 미술품을 팔았다. 그림 값도 몇해 전에 비해 절반 정도 하락한 채 거래됐다고 한다. 개인만이 아니다. 정부 정책도 잘못 흘러가고 있다. 기업체 휴게실에 TV를 설치하면 사원복지비용으로 세제 혜택을 받지만, 교양을 위한 그림이나 조각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화랑들이 중국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다. 지난해 상하이 국제아트페어에 이어, 26일까지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1회 중국국제화랑박람회에 국내의 21개 화랑이 대거 참여했다. 새로운 미술시장을 개척하려는 것이다. 베이징의 수많은 아파트 빈 벽 위에 한국그림을 걸겠다는 야심이다. 8개 참가국 중 한국화랑이 가장 많았고, 작품도 제일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도약하면서도 아직 '명품 산업'에 잠식 당하지 않은 순수의 땅이다. 중국 미술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높다. 이번에 참여한 화상들은 '허름한 차림의 관람객이 작가와 작품가격을 물을 때는, 매매와 상관없이 그들의 진지함이 감동스러웠다'고 한다. 한때는 우리도 진지했다. 우리 화랑 경기는 아파트들이 치솟던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어느덧 황혼기를 맞고 있다.
대신 중국에 동이 트고 있다. 중국은 유구한 문화교양 전통을 지녀온 나라다. 우리처럼 조금 살게 되었다고, 졸부적 물신숭배를 쉽게 드러내지는 않을 듯하다. 미술이 또 하나의 '한류'를 이루게 될까. 중요한 것은 우리 문화가 얕은 물질적 만족감 속에 쇠퇴하는 반면, 중국문화는 흔들림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는 국력의 바탕이 된다. 귀국하는 길에 누가 말했다. "지금은 우리가 발 마사지를 받고 오지만, 50년 후에는 우리가 해 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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