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관객 1,000만 시대의 "그늘"-스태프는 배고프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관객 1,000만 시대의 "그늘"-스태프는 배고프다

입력
2004.04.27 00:00
0 0

작품당 관객 1,000만명 시대에도 스태프는 여전히 배고프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고용계약은 기본이다. 2년 동안 작품 1편만 맡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운이 좋아 작품에 합류한다고 해도 편당 평균수입은 540만원에 그친다. 절대빈곤층, 비정규직도 서러운데 그나마 부정기적이다. "한국영화가 르네상스라지만 스태프의 봄은 아직 멀다. 충무로는 스태프의 피를 빨아먹고 성장한 괴물이다." 경력 6년차에 두 아이를 둔 한 스태프의 극단적 표현이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연출부의 경우 영화기획 단계부터 참여하지만, 영화가 엎어지면(투자를 못 받아 제작이 취소되면) 말 그대로 1∼2년 공사는 도루묵이다. 돈 한푼 못 받는다. 지난해 촬영도중 오른쪽 눈에 화상을 입었는데 산재보험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런데도 '100억원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라는 외국 영화인의 말을 칭찬으로 알아듣는 현실이 안타깝다."

4부 조수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한국영화 스태프는 2,000여명(연출 1,100명, 제작 340명, 촬영 300명, 조명 200명). 1인당 평균연봉은 640만원으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지난해 비정규직 연봉 1,236만원의 51.3% 수준이다. 300만원 미만인 스태프도 16%나 차지했다. 잠을 자지 않고 25시간 이상 일한 스태프는 무려 88%, 49시간 이상 일한 경우도 14%에 이른다. 이제 막 영화판에 뛰어든 '막내'는 라면 값도 못 받는다.

이같은 열악한 임금과 작업환경은 기본적으로 '영화가 좋아서 뛰어든 것이니, 저임금은 감내할 수 있다'는 제작사와 스태프의 전근대적인 인식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한 해 만들어지는 작품수(수요)에 비해 영상관련 전공자(공급)가 훨씬 많은 점, 경력이 일천한데도 알음알음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을 가려낼 수 없다는 점도 이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스태프와 제작사가 맺고 있는 '작품당 계약' 방식이 가장 큰 원인이다. 영화가 '완성'돼야 비로소 돈을 받는 일종의 도급형태이기 때문에 영화제작이 중단되거나 연장될 경우 임금보전이 사실상 어렵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의 경우 스태프가 제작사와 촬영 시간별·회차별 계약을 맺어 촬영이 한 시간만 초과돼도 별도 수당을 받고 있다.

4부 조수연합회 이상필 회장은 "초과근로수당, 초과회차수당 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현행 작품당 계약을 '시간별·회차별 근로계약'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회원 가입률 70% 이상의 조합이나 노조를 통한 조직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한 도제대표(제1조수)가 제작사와 계약을 맺은 후 나머지 팀원에게 계약금과 잔금을 배분하는 현행 '통계약' 방식도 '개별계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론도 있다. 스태프의 열악한 현실과 처우는 개선돼야 하지만, 제작비의 90% 이상을 외부 투자자로부터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스태프의 근로조건 개선을 제작자나 스태프만의 노력으로 해결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조희문 상명대 교수는 "스태프의 처우개선 주장은 원론적으로 옳다. 그러나 한 해 만들어지는 영화 60편 중 70%는 제작비도 못 건진다. 할리우드식으로 임금보장을 하다가는 제작도 못 들어갈 영화가 태반이다. 현행 통계약이 아니라 개별계약이 이뤄질 경우, 제작비 앙등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는 "견습생과 미숙련공이 섞여 있는 상황에서 스태프와 개별계약을 당장 시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제작사가 자기 돈을 들여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를 세울 수는 없다. 우선 스태프가 자신들의 능력과 전문성을 근거로 한 임금 가이드라인부터 제시해야 한다. 그러면 제작자는 한정된 예산에 맞는 수준에서 개별 스태프와 계약을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 36세 조감독의 우울한 하루

스태프는 배만 고픈 게 아니다. 엉성한 기획과 제작 스케줄 관리로 현장에서 기약도 없이 죽 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주연배우와 감독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현장에서 이들은 철저히 소외된 제3자일 뿐이다. 올해 36세의 한 조감독이 그 현장을 적나라하게 담은 글을 한국일보에 보내왔다.

프롤로그

난 7년 전 CF쪽에서 일하다가 선배 소개로 영화판에 들어왔다. 연출부 세컨드부터 시작했는데, 최근 2년 동안에는 한 작품도 하지 못했다. 두 작품을 준비했지만 모두 엎어졌다. 작품이 엎어지면 조감독과 연출부들은 돈도 못 받고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 그리고 세번째 작품에서 겨우 3,000만원을 받게 됐다. 그러나 나 혼자 챙기는 돈이 아니다. 내가 데리고 있는 조수들, 세컨드와 서드, 그리고 스크립터에게 절반을 떼줘야 한다. 세금도 내가 내준다. 그래서 2년 동안 내가 번 돈은 1,000만원이다. 1년에 500만원 벌었다.

촬영현장

여관을 나와 현장에 도착하니 오전8시. 콘티상의 카메라 포지션에 맞추어 세팅을 한다. 미술, 소품 등의 위치를 체크하고 조합에서 온 엑스트라들도 동선에 맞춰 배치한다. 감독과 촬영기사가 반대편에서 무언가 의논을 하신다. 의상과 분장이 모두 끝나서 카메라 앞에 자리한다. 시간은 8시50분. 이 정도면 예정대로 9시에 카메라 돌아가겠는데….

그런데 아직도 감독은 저쪽에 있다. 설마! 촬영기사의 소리에 또 다른 악몽이 시작된다. "야, 카메라, 여기로 와!!" 후딱 감독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본다. "야, 조감독! 아무래도 여기가 더 나은데…. 여기서 첫 테이크 먹자. 준비해." 되돌아오면서 속으로 한마디 한다. '아씨, 콘티대로 간다고 하구선.' 스태프가 나를 쳐다본다. 다들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이다.

낮 12시30분. 스태프 모두 삼삼오오 모여 일단 도시락부터 먹으려는 순간, 차 한대가 도착한다. 주연배우 매니저가 오더니 잠시 할 얘기가 있단다. "저, 오늘 6시까지 밖에 못하겠는데요." "아니 그럼 어제라도 연락을 주시지." "어떻게 하든 오늘 시간을 비우려고 했는데, 저녁 스케줄이 예전에 해 놓은 거라서." 주연배우가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하부 스태프한테도 좀 인사를 잘하지…. 감독에게 주연배우 스케줄에 대해 의논한다. "그래, 그럼 주연배우부터 찍지 뭐. 준비해."

다시 시작된 촬영. 총격신이 있지만 한발의 총성이면 되니까 뭐 어렵지 않겠지. 이미 배우 등쪽에는 피 주머니까지 준비해뒀다. 감독이 갑자기 날 부른다. "야, 총 쏠 때 카메라를 사이드에서 잡으려고 하거든. 그래서 총맞은 배역이 앞쪽에도 피가 나왔으면 좋겠거든." 급히 특수효과팀에게 바뀐 상황을 이야기하고 서둘러 달라고 부탁한다. 오후5시가 지나고, 감독은 아직 준비 안됐냐고 닦달한다. 특수효과팀에게 달려간다. 분주하게 서두르는 특수효과팀에게 좀 더 서둘러 달라고 말하는 내가 밉다.

에필로그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우리에게는 어떤 보상이 있을까. 4대 보험의 혜택을 전혀 못받는 우리들. 흥행수익은 제작자와 투자자가 독식하고 러닝 개런티라는 것도 배우들, 감독, 시나리오 작가에게만 돌아간다. 현장 스태프에게 보너스란 것은 영화사 사장님의 마음에 달려 있는 일이다. 아는 변호사가 그랬다. "당신들이 사인한 것은 계약서가 아니다. 노비문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