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애를 쓰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꿈에 그리던 조국 땅에 다시 묻히게 된 것에 안도하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해를 고국의 국립묘지에 안장토록 해준 한국 정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쿠바에서 조국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임천택(1903∼1985) 선생의 유해를 들고 귀국한 임 선생의 넷째 딸 이르마 림 킴(62·사진)씨는 26일 귀국소감을 묻는 질문에 연신 "그라시아스 아 꼬레아"(한국에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임 선생이 쿠바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21년. 멕시코 농장에서의 혹독한 '노예이민' 생활을 끝내고 동료 300여명과 함께 쿠바 남부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의 사탕수수 농장에 '계약노동자'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쿠바에서의 삶은 멕시코보다 더 열악했다. 전년까지 최고조에 이르렀던 국제 설탕가격이 폭락하면서 임 선생의 일행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됐다.
고통스런 나날은 계속됐지만 임 선생은 한인 이주노동자들을 다독거리며 억척스레 삶을 일궈 나갔다.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서도 2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임 선생은 25년 마탄사스 농장에 '민성국어학교'를 설립, 교장겸 교사로 활동하면서 한글을 가르쳤다. 이어 카르데나스 지역에도 '진성학교'를 만들었고 32년에는 청년학원을, 38년에는 대한여자애국단 쿠바지부를 창설했다.
임 선생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광복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쿠바의 3개 지방에 흩어진 한인회를 규합해 '재쿠바 한족단'을 만들었고, 34년부터는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독립자금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기 광주 출신의 임 선생은 85년 이국땅에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고 이번에 국가보훈처가 국외안장 독립유공자를 봉환키로 함에 따라 고국 땅에 돌아오게 됐다. 국가보훈처는 고인에게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대전국립묘지에 유해를 안장키로 했다.
임씨의 딸 이르마씨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늘 조국에 대한 향수에 묻혀 지내셨다"며 "쿠바의 후손들이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고 한글을 배우는 것도 아버지와 같은 이민 1세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임 선생의 장남 에로니모 림(77)씨는 쿠바 한인 최초로 국립 마탄사스종합대를 나와 쿠바혁명에 참가한 공로로 공업부 차관과 동아바나시 인민위원장을 지낸 후 현재 쿠바 한인회장을 맡고 있다. 3녀인 마르타 림(65)씨는 국립 아바나대를 나와 마탄사스종합대의 철학부장을 역임하는 등 임 선생 일가는 쿠바 사회에 탄탄한 뿌리를 내렸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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