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40앞에서 멈췄지만 마흔 살까지 뛰겠다."24일 대구에서 만난 '아시아의 연속안타왕(39경기)' 박종호(31·삼성 라이온즈)는 의외로 담담했다. 대기록이 중단된 데에 대한 아쉬움보다 앞으로 10년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말대로라면 그는 이제 야구인생에서 6회를 뛰고 있는 셈이다. 그는 '눈에 띄는 것'을 유독 꺼린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조용조용했다"는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날 한화와의 경기를 4시간 앞둔 그는 소속팀 성적이 부진한데 "혼자 나서는 게 좀 좋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인터뷰 장소도 대구구장의 한 구석에서였다.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던데…"라고 말을 건넸는데 대답이 좀 엉뚱했다. "그렇죠? 하지만 사람들이 턱 선이 살아나 예술 같다고 하대요."
무뚝뚝한 박종호는 40경기 연속안타 기록 무산에 대해 묻기도 전에 "더 할 말이 있겠냐"며 먼저 발을 뺀다. "그래도 아쉽지 않냐"고 하자 그제서야 "경기가 끝난 22일 밤 집에서 마지막 타석의 삼진 장면을 TV로 봤는데 (조)용준이 볼이 공 하나 정도 빠진 것 같더라"고 덧붙인다. 또 "친정팀 현대의 막강 선발(정민태―피어리―김수경)이 나선 3연전이 솔직히 부담이 됐고 마지막 고비를 못 넘겼다"고 털어놓았다.
현대와의 3연전은 그의 기록 행진 중 가장 극적이었다. 박종호는 1차전(20일)에서 "민태형이 조급한 내 맘을 읽고 살살 꼬드겨 당했다"며 두 차례 삼진으로 물러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그날 9회말 2사에 "정면승부를 해준 후배" 조용준으로부터 2루타를 뽑으며 위기를 넘겼지만 이틀 뒤 끝내 40경기 연속안타 고지를 밟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입장은 그리 여유롭지 않은 듯 했다. "정말 매일 치던 안타를 이렇게 기다린 적이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기록 행진이 멈춘 뒤 두 경기째 무안타라며 '큰 기록 수립 후 긴 슬럼프'라는 속설이 맞을까 우려했다. 분위기를 바꿀 겸 얼른 두 살배기 아들(규건)과 생후 6개월 된 딸(나현) 얘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굳은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그는 현재 SK코치로 있는 김경기가 소개해준 동갑내기 아내 조선희씨와 말 그대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규건이는 야구를 시킬 것"이라며 "돌잔치 때 일부러 야구공을 바로 앞에 갖다 놓았는데 딱 집더라"고 했다. 나현이 역시 운동선수로 컸으면 좋겠단다. 대를 이은 스포츠 가족을 이루는 게 그의 소박한 꿈이다. "원정경기 가면 전화로 나현이 우는 소리밖에 못 듣지만 큰 힘이 된다"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대기록 수립의 밑거름이었다고 자랑한다.
현재 그는 "어려서부터 너무 좋아하던 이만수, 류중일 선배가 뛴"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다. 꿈에 그리던 유니폼을 입고 대기록마저 세운 지금 "몸 관리 잘해 오래 그라운드에 서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고 말한다. "가장 오래 뛴 선수가 가장 명예로운 기록"이라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한 그날 그는 2루타를 뽑아냈다. 경기 후 그라운드에 누워 마무리 운동을 하던 그는 "슬럼프로 안 가고 안타를 쳐 다행"이라고 짧은 소감만 밝혔을 뿐 담담하기는 여전했다. 옆에 있던 동료 진갑용이 "난 오늘까지 5경기 연속 안타다. 기록을 깨겠다"며 농을 걸어왔다. 그래도 못들은 척 운동만 하는 박종호였다.
/대구=주훈기자 nomade@hk.co.kr
● 프로필
생년월일=1973년 7월 27일
신체조건=176㎝ 76㎏
출신교=구암초―성남중―성남고
가족관계=아내 조선희씨와 1남1녀
투타=우투양타
프로경력=LG(92)―현대(98)―삼성(2004)
연봉=2억2,500만원(4년 계약) 이적료=22억원
수상기록=타격왕(2000) 골든글러브 2회(9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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