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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 본다]<15>3부 변화하는 정치·국가전략 ③ 정치 유동화와 포퓰리즘의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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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 본다]<15>3부 변화하는 정치·국가전략 ③ 정치 유동화와 포퓰리즘의 성장

입력
2004.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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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치는 1955년 자민당과 사회당에 의해 보수-혁신 양당체제가 형성된 이후 유권자의 정당지지도 대체로 양분돼 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권자의 지지정당 이탈로 무당파층이 급격히 증가했다. 무당파층의 증가는 정치적 유동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선거에서 각 정당의 지지의석을 예상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졌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명멸(明滅)하는 정당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원래 무당파층이란 말은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무당파층에는 정치에 무관심해 지지하는 정당이 없거나, 정치에 실망해 의도적으로 정당과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무당파층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이해하고 있으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무당파층의 비율은 50% 전후로 나타나고 있다. 변덕스러운 집단인 무당파층은 선거 때마다 매우 다른 행동패턴을 보이고 있어서 각 정당은 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전략 수립에 부심하고 있다.

무당파층은 대체로 젊은 층에서 많으며 정치가에 대한 신뢰가 낮고 정치적 만족도나 유효성 감각이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1990년대 이후 정당의 이합집산, 그리고 개별의원들이 소속 정당을 자주 바꾸는 현상이 빈발하면서 지지정당이 없어진 사람들이다.

특히, 1993년 총선거에서 자민당 일당지배가 종식되고 비자민연립정권이 새롭게 등장했다. 호소가와(細川護熙)정권은 1994년 1월 정치자금법과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성과를 거뒀으나 국민복지세 신설안을 내놓고 맥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이후 하타(羽田 牧) 내각은 출범 2개 월 만에 퇴진함으로써 연립정권에 대한 기대는 좌절됐다.

연립정권 출범에 따른 기대와 이에 대한 좌절은 정치전반에 걸친 무관심과 정치가에 대한 냉소의식을 증폭시켜 무당파층을 양산했다. 결국 1995년에 실시된 도쿄, 오사카지방선거에서 무당파지사가 탄생되면서 무당파층의 정치적 위력이 일본사회를 강타했다.

무당파층은 정치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정치적 관심이 많으며 학력도 높은 사람들로 나타났다. 대부분 대도시지역에 거주하고 투표율도 낮지 않아 쟁점에 따라 높은 정치적 관심과 투표율을 나타내고 있다. 무당파층은 의회정치나 정당내부의 권력투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국제경쟁력, 경제마찰, 국제분쟁과 같은 글로벌 쟁점에 대해서는 매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국내문제에 대해서도 일본의 국가적 비전이나 미래상, 지역사회에 직면한 제반 문제 등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2001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수상이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면서 당선된 것도 무당파층의 이러한 특성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무당파층의 증가에 따른 정치적 유동성은 유권자와 정치시스템수준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에서 혁신정당 지지자는 젊은층, 보수정당은 노년층에 많았으나 이러한 분포가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20대와 60대는 공명당과 공산당과 같은 종교정당이나 이데올로기정당에 대해 거부감이 많았으나, 최근 20∼30대에서 거부정당이 많이 감소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투표하는 정당이 바뀌는 유권자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총선거에서 지속적으로 같은 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의 비율이 40%이하로 감소했다. 선거에서 투표율은 감소하고 있지만 투표와 기권을 오가는 유권자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정치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지속적인 정당간의 이합집산과 정당시스템의 변화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무당파층 기권이 증가하면서 총선거 투표율은 낮아져 선거 당일 날씨변화에 각 정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투표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날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대한 무당파층의 존재는 일본에서 포퓰리즘 정치를 고조시키고 있다. 무당파층의 표심을 포착하기 위해 연예인, 스포츠 선수, 언론인 등이 각 정당의 예비후보자로 각광을 받고 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도쿄, 오사카지사 후보자는 연예인 출신이었다. 나가노현과 현재의 도쿄도지사는 유명한 소설가였다. 전 외무장관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의원은 연일 TV프로에서 등장해 연예인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고이즈미수상의 출범초기 지지율은 90%정도로, 이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렇게 높은 정치가의 대중적 인기는 '아이돌(idol) 정치가' 증후군을 만들어내고 있다. TV연예프로그램에 정치가는 단골손님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움직임은 무당파층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형 포퓰리즘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 무당파층은 대체로 정치적 관심이 비교적 높으며, 변혁 지향적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치적 쟁점에 따라 침묵하기도 하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서기도 한다. 동시에 정치적 유동성의 증대는 불안정 요인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치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에너지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무당파층에 대해서 미디어를 이용한 포퓰리즘적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러한 대응은 유권자를 더욱더 냉소적으로 만드는 촉진제가 될지도 모른다.

협찬:SK 주식회사

/고선규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 38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도호쿠대 정보과학박사 논문 일본 정당의 온라인화와 인터넷 선거운동("국제정치논총" 제43집 4호 2003년) 등

■작년 총선 민주당 약진은…무당파의 힘!

"무당파층은 잠이나 주무세요."

2000년 6월 20일 모리 요시로(森喜朗) 당시 일본 총리는 코앞에 닥친 중의원 선거 지원유세 중 뼈아픈 실언을 해 곤욕을 치렀다. 언론의 보도로 일파만파가 된 그의 실언은 눈엣가시 같은 무당파층에 대한 여당 지도자의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담겨있어 눈길을 끌었다.

일본에서 '무당파층'이란 용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95년 치러진 도쿄도와 오사카부 지사선거가 계기가 됐다. 이 선거에 코미디언으로서 무소속 출마했던 아오시마 유키오(靑島幸夫)씨와 요코야마 녹크씨가 도쿄와 오사카에서 각각 당선되자 일본 언론들은 '무당파층의 승리'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기존 정치와 정치가에 대한 염증 등이 탄생 배경인 무당파층은 자연히 안티 여당적인 성격이 농후하다. 이 때문에 여당으로서는 이들이 골치 아픈 존재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거행된 중의원 선거에서도 무당파층은 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무당파층은 18%이고 이중 51%가 소선거구에서 야당인 민주당을 지지했다. 비례구에서도 55%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등 민주당 약진의 원동력이 됐다. 요미우리신문의 출구조사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무당파층이 20%로 나타났는데, 이중 56%가 비례구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 지난해 선거에서는 무당파층의 전체적인 비중이 줄어 들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98년 참의원 선거 이후 3번의 국정선거에서 무당파층은 여당인 자민당의 지지층에 이어 2위의 점유율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자민당 민주당에 이은 3위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정치와 미디어의 상호불신과 이들 양자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무당파층 생성의 원인"이라며 정보공개 등 국민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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