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개혁안의 하나로 복수상임위원회 제도가 제안되어 논란을 빚고 있다. 원래 국회는 지난 제6대 국회까지 본회의 중심으로 국회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어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안건 심의과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분야별 분업 체계를 갖추는 일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도입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 국회의원이 여러 위원회에 배속되는 복수상임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이는 바로 이런 상임위원회 중심제도의 의의를 정면으로 부정하게 된다는 것이 이 제도 도입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그러나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는 국회 운영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노정해 왔다. 무엇보다도 지나친 분업체계로 인해 정책과제를 종합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에서 다루지 못하고 할거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서 비롯되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정보사회로 들어서면서 사회체계의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사회정책과제의 영역 간 연결 정도는 획기적으로 높아지게 되었다. 어떤 문제를 다루기 위해 보다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제고된 것이다.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상임위원회의 분야별 안건 심의체제를 중심으로 문제를 논의하기 때문에 보다 종합적인 진단이나 처방의 제시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업무를 분업체계로 하면 지속적 반복적으로 그 분야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의 축적 정도가 높아져 전문성이 제고되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아주 무기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국회의원은 여러 분야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력을 지닐 것이 요구된다. 모든 사회정책과제가 상호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소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과 같은 국회의원 정수를 기준으로 상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을 배정하는 경우 위원회별 위원 수가 20명 내외를 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위원회의 운영 결과나 회의 진행 방향을 예측하기가 매우 손쉽게 되어 있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정책 성향이나 인간관계가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면 안건의 통과가 가능할 것인지를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몇몇 위원을 로비의 대상으로 삼아 집중 공략하면 안건 통과를 낙관할 수 있게 된다. 안건 심의 과정에서의 부패 유발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의미다.
복수상임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상임위의 구성원 수가 배가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로비 대상자를 선정하기가 어려워지고 로비해야 할 대상자의 수도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부패의 소지가 줄어들게 된다.
위원회 중에는 여러 국회의원이 선호하는 위원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위원회도 있다. 후원회 운영에 유리하거나 지역구 사업의 획득이나 집행에 도움이 되는 위원회에 대한 인기가 높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위원회 구조에서는 제한된 의원만이 이런 위원회에 배정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배정권자에 대한 평의원의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복수상임위원회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에는 바로 이런 경쟁률을 약화시키면서 배정권 행사를 둘러싼 권력의 집중을 순화시킬 수도 있다.
위원회별 위원 정수가 증가하면 안건 심의과정에서의 발언자수가 늘고 이견의 제시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보다 신중한 안건 심의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위원회에 대한 접촉면이 증대하기 때문에 입법과정에 대한 일반시민의 의견 투입기회가 확장되는 효과도 있다. 이점도 복수상임위원회 제도의 장점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복수상임위원회 제도의 도입은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다.
/박재창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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