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 서재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니 봄 풍경이 그렇게 화사할 수 없다. 희고 붉은 철쭉이 만개한 가운데 정원에 선 온갖 나무들이 저마다 잎을 키우고 있다. 꽃도 예쁘지만, 꽃보다 잎들이 더 예쁜 계절이 사월 하순이다.어린 시절에도 늘 이렇게 갖가지 꽃나무와 잎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 어머니는 논밭에 나가 있고, 그러면 혼자 뜨락에 앉아 눈에 들어오는 마당가의 나무들과 발 밑을 지나는 개미들, 온 세상이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데도 제풀에 놀라 홰를 치는 닭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림자를 길게 디밀어오는 햇빛, 그 사이로 부는 바람에게 말을 건다. 내 눈에 보이는 너희들의 모습, 너희들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을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창 밖을 바라보며 그들에게 말을 건다. 그러다 가끔 아내에게 한마디씩 듣는다. "혼자 뭘 그렇게 중얼거려요?" 그러면 또 대답한다. "혼자가 아니야. 창 밖의 봄이 자꾸 말을 붙여오네."
정말 꽃보다 잎이 더 예쁜 날들이다. 봄의 속살까지 보인다. 모두 눈을 돌려 창 밖을 바라보길. 저 시간은 이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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