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국회는 어떤 모습일까. 5월 30일 개원을 앞두고 깨끗한 국회, 특권을 줄인 국회를 만들자는 논의가 일고 있다. 총선 결과에 나타난 시대정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정치개혁법 입법 과정에서 보았듯이 국회의원들에게 스스로를 개혁하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주문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정치지도를 바꿔놓은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를 생각한다면 의원들은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변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100가지가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낙선과 당선을 거듭했던 한 의원은 "낙선한 순간 잘 돌아가던 모든 것이 멈추고, 환하게 켜져 있던 모든 불이 꺼진다"고 털어 놓았다. 그만큼 의원들은 보통 국민과 다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17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원내 진출의 꿈을 이룬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의사당의 의원 전용 출입문과 엘리베이터를 없애는 등 각종 특혜와 특권을 폐지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공항 귀빈실 사용, 관광성 해외 여행 경비 지원, 국유 철도와 선박의 무료 이용 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런 특혜 중에는 시대착오적인 것도 있고, 의원의 업무상 필요한 것도 있다. 전용 출입문이나 엘리베이터 등은 당장 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인들과 같이 사용할 경우 불편한 점도 있겠지만, 의사당은 의원들의 집이 아니라 민의의 전당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외 여행 지원이나 철도 무료 이용 등은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면 된다.
특혜를 없애라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특권을 없애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이나 국회에서의 공식 발언에 대한 면책특권 등은 의정활동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만일 이런 특권들이 폐지된다면 국회가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군사독재 시절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런 특권들이 원성의 대상이 된 것은 의원들이 그것을 함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분별력도 소신도 정의감도 없는 사람들에게 특권을 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국민은 신물이 나도록 보았다.
법을 어긴 동료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툭하면 방탄국회를 열고, 구속 중인 동료를 풀어달라는 석방 결의를 하고, '아니면 말고'식의 무차별 폭로와 비방으로 정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는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들이 '나으리'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새파란 검사를 '영감'이라고 부르던 것도 옛날 일이 아니다. 이제 그런 용어들은 사라졌지만, 스스로를 '나으리'나 '영감'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깨끗이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특권이 아니라 특권의식이다. 의사당에서 함부로 소리지르고, 폭력을 휘두르고, 부정한 의결에 동참하고, 엄청난 돈을 죄의식 없이 받는 것 등은 모두 특권의식에서 나온다. 일반 국민에게야 죄가 되지만 나는 국회의원인데 무슨 문제냐는 '나으리 의식'에서 온갖 파행이 속출하게 된다.
17대 국회의원 299명 중 187명이 초선이다. '나으리 의식'을 버린 실무가형 의원상을 기대할 만하다. 자신을 '나으리'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에겐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나는 의원들에 대한 강도 높은 정신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국회의원들은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정치에 입문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왜 시간이 흐르면서 나라에 해를 끼치고, 쇠고랑을 차고, 본업보다 잿밥을 챙기고, 신세를 망치게 되는가.
국회의원들이 모두 우등생으로 임기를 마치게 해야 나라에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려면 의원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국회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얼마나 기여를 하고 얼마나 해를 끼쳤으며,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성공하는 국회의원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이런 내용들을 의원들이 공부하게 해야 한다. 의원들이 거드름을 피우며 의사당에 가지 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게 해야 한다. 특혜나 특권이 문제가 아니다. 권위의 거품을 빼고 참다운 권위를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명수/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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