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독자에세이/깨소금같던 쌍둥이 손녀와의 4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독자에세이/깨소금같던 쌍둥이 손녀와의 4년

입력
2004.04.26 00:00
0 0

재작년 10월 내가 사는 과테말라에서 둘째 딸 결혼식을 무사히 치르고 난 뒤 기념품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때 곁에 있던 다섯 살짜리 쌍둥이 외손녀가 빨간 커피잔을 들고 "엄마가 빨간 색을 좋아하는데 엄마 주자"고 말하는 게 아닌가. 온갖 정성으로 4년간 키워 줬는데 제 부모와 함께 산 지 1년도 안된 손녀들이 엄마를 챙기는 것을 보고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서운함이 들었다.쌍둥이가 태어난 것은 1997년 5월이었다. 스페인에 사는 사위가 갑자기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 왔다. 딸이 쌍둥이를 임신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던 나는 급히 스페인으로 날아갔다. 인큐베이터에 들어 있는 쌍둥이 큰 애는 여기 저기 고무호스를 달고 있었다. 심장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나왔다는 의사의 설명에 사위는 좌불안석이었다. 다행히 석 달이 지나 아이들 건강이 좋아져 둘을 데리고 과테말라로 돌아왔다. 딸은 엄마한테 애 둘을 보내며 "아빠가 안 좋아하시면 어쩌지"라며 공항에서 조바심을 냈다.

우리 부부는 두 애를 4년 키우면서 쌍둥이를 키운 부모들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쌍둥이는 둘을 키운다는 산술적 차원의 계산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기하급수적 수고와 애정을 기울여야만 한다. 하지만 손녀들이 애교를 부리거나 떼거지를 쓸 때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무한한 기쁨을 느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살맛 나던 시절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답한다. 연애하고 단칸 셋방에서 신혼살림 차려 깨소금 쏟아지던 그 시절보다 쌍둥이 키우는 재미에 날 가는 줄 몰랐던 4년간이라고. 그러나 결국 2001년 11월 '부모와 함께 있어야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주변의 권유로 결국 쌍둥이를 스페인으로 보내야만 했다. 애들을 보내고 난 텅 빈 집에서 남편은 삶의 한 귀퉁이를 잃어버린 듯이 넋 놓고 있었다.

손자 애써 키워 줘야 헛일이라는 옛말이 맞다 해도 이제 7살로 훌쩍 커버린 쌍둥이를 다시 품안에 거두며 재롱 떠는 모습을 보고 싶다. /lisuku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