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9·11 테러와 숫자 11을 연결짓는 해석이 유행했다. 테러가 일어난 월일의 자리 값 9, 1, 1을 더하면 날짜 11일과 일치한다. 9월11일은 1월1일을 기준으로 할 때 254번째 되는 날인데, 254의 자리 값을 더하면 11이 된다.테러의 대상이 된 세계무역센터는 두 동의 110층 짜리 건물로 되어 있어 110에서 0을 제외하면 11이 되고, 쌍둥이 빌딩의 모양마저 11을 닮았다. 테러 때 납치된 첫 번째 비행기의 편명이 AA11이므로 11을 포함하고 있고, 2명의 조종사 등 9명의 승무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또한 승객 수가 92명이므로 자리 값을 더하면 11이 된다.
뿐만 아니라 테러의 희생물이 된 두 번째 비행기 UA77에 타고 있던 승객 수는 65명으로, 이 역시 자리 값을 더하면 11이 된다. 또 테러 당일 비행기의 충돌로 빌딩이 완전히 무너진 시간이 10시28분인데, 시간의 자리 값 1, 0, 2, 8을 더하면 11이 되니 우연치고는 대단한 우연이다.
테러를 당한 뉴욕주는 미국에 11번째로 편입된 주며, 뉴욕의 핵심부인 맨해튼 섬은 이름이 11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헨리 허드슨(Henry Hudson)에 의해 1609년 9월11일 발견됐다. 테러로 공격을 받은 New York City와 미 국방성 The Pentagon, 그리고 빈 라덴의 은신처 아프카니스탄 Afghanistan은 모두 11개의 알파벳으로 되어 있다. 미국에서 911은 우리나라의 119와 같은 긴급전화 번호인데 그 날 긴급 상황이 일어난 것도 하나의 아이러니이다.
얼마 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대형 열차 테러가 일어났다. 테러의 배후로 처음에는 바스크 분리주의자를 지목했지만, 결국 빈 라덴 조직 알카에다의 소행임이 유력해졌다. 이러한 해석에는 일련의 물증과 더불어 숫자에 의한 심증이 한몫을 하였다. 스페인 테러는 2001년 9월11일로부터 정확하게 911일 지난 2004년 3월11일에 발생했고, 날짜 역시 11일이므로 숫자상으로 정교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라크전과 관련해 작년에는 666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이라크 전에 파병하는 우리 군의 숫자가 요한 계시록에서 짐승의 수로 지목한 666과 일치한다고 해서 논란이 벌어졌다. '종교전쟁', '문명의 충돌'로 불리는 이라크 전쟁에 악마의 숫자로 간주되는 666명의 군을 파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방부는 기술병 몇 명을 추가해 논란을 마무리 지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숫자 하나 하나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신비화하는 수비(數秘)주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전통 탓인지 인간은 여러 현상이나 상황을 숫자로 표현하고 해석하려는 경향을 갖는다. 숫자 11과 관련된 다채로운 해석을 보면서 테러나 이라크 전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협찬: 한국과학문화재단>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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