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참사인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가 북한의 개혁 개방을 촉진하고, 나아가서는 동북아 정세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전망은 북한이 구호 및 지원활동을 적극 요청함에 따라 세계 각국 정부·단체의 대표단과 활동가들이 사고지역에서 상당기간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데 기인한다.특히 용천과 신의주시 등 북한 서북부 지역 일대는 중국과의 접촉으로 북한에서 가장 개방도가 진척돼 있고, 주민들의 인식도 '깨어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이 지역 주민들이 구호활동 과정에서 외부와 접촉을 계속할 경우 '사고 전(前)의 북한'과 '사고 후(後)의 북한'이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참사가 북한을 '강제 개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낳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북부 지역 개방 가속화
용천 부근은 주요 중공업지대이면서 중국과의 교통 요지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대규모 구호활동이 계속될 경우 신의주시가 배후기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이 경우 신의주는 한시적으로 각국의 정부요원 및 NGO 관계자들이 몰려드는 국제도시가 될 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인과의 직접 접촉으로 주민들의 시각이 개선될 뿐만 아니라, 군부조차도 개혁개방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서북부 지역은 북한측이 2002년 신의주 행정특구 지정을 통해 대외개방을 추진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북한 당국은 신의주 시가지 뿐 아니라 인근 의주 염주 철산 군 및 용천군 일부를 특구에 포함시켰다. 북한이 이 지역 개방을 추진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중국과 접촉이 빈번해 주민들의 개방 쇼크가 덜 할 것이란 점 때문이었다.
국제사회와 북한의 인식 변화
2차 북핵파문 이후 싸늘해졌던 국제사회의 인식도 우호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인도적 차원이기는 하나 미국, 일본 등도 앞다투어 구호물자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용천역 사고 수습과정에서 국제사회와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이후 예상됐던 북한 경제개혁정책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정부간 협상에는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면서 "6자 회담 참가국이 가장 적극적인 지원용의를 표시하고 있는 만큼 핵문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도 25일 "미국이 즉각적으로 지원의사를 표시한 것은 인도적 차원일 수도 있지만 (3차 6자회담) 상황을 전제했을 것이고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도 이례적으로 국제사회의 구호 움직임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박길연 대사도 23일 미국 동포언론 '민족통신'과의 회견에서 "우리 대표부도 이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대외접촉 강화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북한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미군철수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며 녹록치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어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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