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전에 가자지구에서 압델 아지즈 란티시(당시 54세)를 인터뷰할 때 통역은 여러 나라 기자가 탄 우리 택시를 그의 아파트 앞에 버젓이 주차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이스라엘군 헬기 조종사들이 알고 기자들이 떠날 때까지는 암살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지난 17일 게릴라조직 하마스의 최고지도자인 소아과 의사 란티시는 아파트를 나서 차에 타는 순간 아파치 헬기에서 발사한 미사일로 가루가 됐다. 똑 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 후임으로 하마스를 맡은 지 한 달 만이었다.
란티시를 인터뷰하기 몇 시간 전 우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가자지구 보안책임자 무하마드 달란과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극명하게 대조됐다. 달란은 말쑥한 차림에 호화로운 사무실에서 매니큐어 칠한 손에 말보로를 들고 향을 가미한 커피를 대접했다. 반면 란티시는 칙칙한 평상복에 슬리퍼를 신었다. 불빛 희미한 아파트도 단출했다. 유일한 장식물이라곤 팩스뿐이었다. 란티시는 선동적인 수사를 구사했지만 놀라울 정도의 평정이 스며 있었다. 그것은 숙명론과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평정이었다.
보안은 느슨했다. 헬기가 언제든 올 수 있지만 생활을 바꾸지는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여전히 지역 대학에서 매주 강의를 했고 손자들도 함께 지냈다. 그리고 벌써 한 차례 암살을 모면하기도 했다.
나는 그 날 란티시의 집에 들어서면서 유대인 어린이들을 날려버리는 사람과 악수할 때 기분이 어떨까 혼란스러웠다. 또 따지고 들 것이 뻔한 유대계 미국인 기자에게 인터뷰를 허용하는 그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했다.
란티시는 붙임성이 있었다. 힘겨운 영어로 이스라엘 점령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명과 존엄의 상실, 어린이의 죽음, 뿌리 뽑힌 나무들, 불도저로 뭉개진 땅, 모독당한 성소(聖所) 등등. "순교의 폭탄공격"은 이스라엘 살인자들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지금 프랑스인이 독일인에게, 알제리인이 프랑스에, 베트남인이 미국인들에게 저항하기 위해 한 것과 똑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자리를 함께 한 유럽의 좌파 저널리스트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나 '점령'이라는 단어에는 뭔가 불길한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세계인은 팔레스타인 점령을 1967년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에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차지하면서 발생한 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67년이나 48년(이스라엘 건국)도 아니고 그보다 수십년 전, 즉 팔레스타인이 영국이 관할하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이었을 당시 시온주의자들이 땅을 마구 사들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재의 이스라엘 영토 전체가 점령지라는 것이다.
그의 평화 계획은 단순했다. '500만 유대인은 떠나라. 그러면 평화가 올 것이고 그 때까지는 성전(聖戰)이다.' 그에게 이스라엘 지도자는 모두 똑같았다. 바라크는 평화를 위해서 한 일이 아무 것도 없고, 페레스는 샤론 현 총리와 똑같이 살인자였다. 좀 부드러웠을 뿐이다. 샤론이 이들과 다른 점은 신념이 아니라 '꼴통'기질이었다.
"역사는 샤론이 이스라엘을 파괴하기 시작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쓸 것입니다. 한 120년 정도 사실 수 있겠어요? 그러시길 바랍니다. 그럼 그 날을 보시게 될 겁니다." 미래의 하마스 지도자가 내게 장수를 빌어주다니…. 내가 할 일이라곤 그저 이스라엘 버스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뿐이었다.
데이비드 마골릭 배니티 페어 칼럼니스트
/뉴욕타임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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