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지고, 치고, 달린다." '국민 스포츠'로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야구는 퍽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극적인 역전과 짜릿한 홈런에 가려 눈에 띄진 않지만 야구 경기에는 많은 과학 법칙이 숨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 전설의 홈런왕 반열에 오른 행크 아론은 "슬럼프에 빠졌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난 그저 방망이를 계속 휘두를 뿐이다"라고 말했다지만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선수와 감독이 물리학 교과서를 펼쳐보면 적잖이 도움이 된다. 야구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과학적 요소 몇 가지를 살펴봤다.
타자의 꿈 '스위트 스폿'
"맞는 순간 홈런일 줄 알았다."(플로리다 마린스 최희섭 선수, 4월 11일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뽑아낸 후)
홈런을 친 타자들이 인터뷰할 때 가장 즐겨 사용하는 소감은 "맞는 순간 알았다"는 말이다. 실제로 타자들은 "경험상 배트에 맞으면 바로 날아가는 부분, 즉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 곳에 공이 맞으면 타자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는 무아(無我)의 지경에 빠진다고 한다. 정말 이 같은 꿈의 부위가 존재하는 것일까.
고무줄을 튕기면 위 아래로 흔들리는 것처럼 모든 물체는 다른 물체와 만났을 때 진동하기 마련이다. 딱딱해 보이는 야구 방망이도 시속 100㎞가 넘는 공과 부딪히면 별 수 없이 떨리게 된다. 모든 파동에는 어느 쪽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고정 포인트가 있다. 이를 '마디(node)'라 한다.
방망이에 공이 맞을 때 둘이 맞붙어 있는 시간은 약 0.0005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짧은 순간에도 방망이는 여러 차례 진동하는데 물체의 밀도나 공기 저항 등 다양한 방해요소에 진동 에너지를 뺏겨 진폭은 점점 낮아지고 극점간의 거리도 점점 좁아지게 된다. 물리학자 잔트(L. Van Zandt)의 계산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나무 방망이가 공을 만나는 순간 주파수는 170㎐였다가 570㎐, 1100㎐로 늘어가는데 이 세 진동의 마디가 모여있는 곳이 바로 '스위트 스폿'이다. 일반적으로 방망이 끝에서 약 17㎝에 위치했다고 알려진 이 부분에 맞은 공은 방망이의 떨림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투수로부터 전해져 온 에너지를 그대로 실은 채 허공을 가르게 된다.
방망이를 수직으로 세워 들고 망치로 끝에서부터 두드리면 어느 한 점에서 잡고 있는 손에 아무 느낌이 오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스위트 스폿.
변화구는 정말 휘어질까
"물리학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난 공을 휘어지고 미끄러지고 변화하고 떨어지게 할 수 있어요. 공을 잡고 던지는 방법을 조절함으로써 가능한 거죠."(미네소타 트윈스의 전설적 투수였던 짐 카트의 회고담 중에서)
오랜 기간 많은 이들은 변화구가 단순한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촬영 기술이 발달하면서 카메라에 잡힌 변화구는 말 그대로 투수의 손을 떠나 마음대로 휘어지며 포수의 글러브에 꽂힌다는 것이 밝혀졌다.
야구공이 휘는 원리는 독일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하인리히 마그누스(Heinrich Gustav Magnus)가 날아가는 포탄에서 발견한 '마그누스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마그누스 효과'란 구(球) 또는 원기둥이 회전하면서 유체(기체나 액체) 속을 지나갈 때 회전축 및 진행방향에 수직으로 힘을 받는 현상으로 이 때 공이 받는 힘을 '마그누스 힘'이라고 한다. '마그누스 힘'은 공기 밀도와 비례하기 때문에 고도가 높아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곳에서는 변화구가 잘 안 먹힌다.
'마그누스 효과'는 스위스 수학자 베르누이(Jakob Bernoulli)가 발견한 '베르누이 법칙'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이는 유체의 속도가 빠르면 압력이 낮고 속도가 느리면 압력이 높아지는 원리다. 공의 회전축과 같은 방향의 공기는 가속을 받아 속도가 빨라지고 반대쪽은 공기의 속도가 느려져 압력이 높은 쪽이 낮은 쪽으로 공을 밀어내게 된다.
이 같은 원리에 따라 오른손잡이 투수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켜 던진 공은 왼쪽으로 휘어 오른손잡이 타자의 몸으로부터 멀어지는 변화구를 만들어낸다. 왼손잡이 투수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 던지면 공은 반대로 휜다. 손목의 자연스러운 회전과 반대 방향의 스핀을 먹이는 '깜짝 투구', 즉 '스크루볼'은 종종 투수의 팔꿈치 부상을 유발하긴 하지만 타자의 예상을 뒤엎어 위력적이다. '마그누스 효과'는 축구에서 휘어지는 프리킥을 차거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탁구공을 튀게 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나무 방망이 vs 알루미늄 방망이
"우리와 같은 나무배트를 쓰면 불리할텐데…. 알루미늄 배트를 쓰는 게 어때요?"(LG트윈스 이순철 감독, 지난 달 일본 사회인 야구팀 '오키나와 전력'과 맞붙기 전, 실력차가 너무 날 거라며)
'알루미늄 배트를 써야 실력이 비슷해질 것'이라고 자신하던 이순철 감독의 LG트윈스 야구 팀은 결국 이날 경기에서 사회인 야구 팀에게 17대15로 패하고 말았다. 어쨌든 알루미늄 방망이가 나무 방망이보다 타자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알루미늄 방망이 사용은 금지돼 있다.
알루미늄 방망이는 속이 비었고 나무 방망이는 안까지 꽉 차있다. 나무 방망이는 두꺼운 끝부분에 무게가 몰려 있어 중심점이 손잡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때문에 같은 무게라도 나무 방망이가 더 부담스럽게 느껴져 방망이를 휘두르는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한편 일리노이대 핵물리학과 교수인 알란 나탄(Alan Nathan) 박사는 한 논문에서 알루미늄 방망이가 유리한 것은 '덤블링 효과'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무보다 밀도가 훨씬 낮은 알루미늄은 쉽게 휘어지기 때문에 공과 부딪히는 순간 스프링처럼 공을 밀어낸다는 것이다. 반면 나무 방망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휘어지지 않는 대신 공 자체를 찌그러지게 해 공이 날아갈 에너지를 뺏는다. 같은 원리로 테니스 선수들은 보통 라켓을 약간 느슨하게 조율해 적은 힘으로도 공이 잘 뻗어나가게 한다. 물론 너무 푹신해 공의 속도가 느려질 정도가 돼서는 안 된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