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누가 전주영화제가 어떤 영화제냐고 물으면 손을 들어 '디지털 삼인삼색'을 가리켜야 할 듯하다. 한국의 봉준호(35), 일본의 이시이 소고(石井聰瓦·47), 홍콩의 유릭와이(38) 감독이 각각 30분씩 만든 '디지털 삼인삼색'(26, 28일 상영)은 독립과 대안 그리고 소통을 내걸며 23일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의 모토를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영화 섹션인 '영화궁전'에서 독일판 해리포터로 불리는 '마녀비비'와 함께 영화제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다.봉 감독의 '인플루엔자'는 CCTV에 비친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를 디지털 카메라의 거친 질감 속에 담았다. 한 무직자가 날치기, 퍽치기, 강도살인을 하게 되는 과정이 충격적이다. 봉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영화제가 아니었으면 시도조차 못했을 작업"이라며 흐뭇해 했다.
감독 본인이 촬영까지 겸한 이시이 소고, 유릭와이의 작품은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을 극한까지 활용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시이 감독의 '경심'(鏡心·Mirrored Mind)이 자연광을 이용해 아름답고 생생한 풍광을 담았다면, 유릭와이 감독의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포커스 아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계속 이어질 이미지를 궁금하게 했다"는 봉 감독의 감탄이 허언이 아니었다.
세 감독이 털어놓은 제작과정도 영화 자체만큼이나 개성이 강했다. 봉 감독은 "CCTV 화면에 잡힌 분들은 배우가 아니다. 초상권 동의를 받지 않은 건 죄송하지만 연출된 것보다 더 나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나는 잘 훈련된 연극배우(윤제문, 고수희)를 써서 폭력이 질주하는 느낌도 살았다"고 덧붙였다. 불법 이방인과 넝마주이의 동화 같은 사랑을 무성영화로 찍은 유릭와이 감독은 "무성영화에 바치는 애정이다. 무성영화에 영화의 모든 문법이 있다"고 말했다.
이시이 소고 감독은 '임사(臨死)' 체험으로 더 성숙해진 한 여배우를 그렸다. 해외 로케이션을 다니느라 전주영화제가 지원한 제작비(5,000만원)를 초과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집에서 쓰는 삼각대와 제일 조그마한 카메라, 한 명의 조수만 동반했고 이코노미 클래스만 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전주=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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