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화구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웅덩이를 만들어낸 폭발 흔적, 엿가락처럼 휜 철길, 돌더미로 변해버린 집들. 용천은 도시 전체가 주저앉아 버린 폐허 그 자체 였다."24일 용천 현장을 방문한 40여명의 평양 주재 국제구호기구 요원 및 각국 외교관들은 AP통신등에 현지 상황을 이같이 전했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그간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냈고 용천 주민들의 비참한 실상도 단편적이나마 전해졌다.
피해 규모
주민들은 "미국이 마침내 핵 폭탄을 떨어뜨린 줄 알았다"는 말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말대로 용천은 처참한 전쟁터 같았다. 폭발지점에는 깊이 8∼10m의 큰 웅덩이 두개가 파졌고 건물이 줄지어 서있던 역 주변은 태풍이 지나간 듯 건물과 흙더미로 뒤덮여 버렸다. 건물 콘크리트벽은 시루떡처럼 주저앉았고 철근은 콘크리트를 뚫고 앙상한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길 소렌슨 평양 주재 세계보건기구(WHO) 대표는 "실로 처참했다. 폭발지점에서 반경 500m이내는 완전 파괴됐고 반경 10㎞이내 건물들의 유리창 등은 모조리 날아갔다"고 말했다. 제이 마타 국제적십자사 직원은 "어딜 가나 돌무더기였고 모든 곳이 엉망이었다. 폭발 당시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은 무너진 건물 더미 위에 생생히 남아있었다"고 전했다.
국제기구 요원들은 역 주변 수백m의 지역이 성한 건물 하나 없는 '폐허의 평원'이었다면서 도시 전체가 정적에 휩싸여 있다고 말했다.
폭발지점으로부터 반경 4㎞이내 2,000여 채의 가옥과 129개 공공건물이 완전 파괴돼 2만7,000∼3만 명으로 추산되는 현장 중심부 주민의 절반 가량이 길가에 나앉았다.
어린이 피해
국제기구가 제일 먼저 찾은 곳 중의 하나는 폭발지점으로부터 300m 떨어진 용천소학교. 전체 사망자의 절반인 76명의 어린이들이 사망한 이 학교는 지붕과 꼭대기층이 날아가 버렸다. 중국 신화통신은 살아남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폭격 맞은 듯한 학교건물, 운동기구, 전깃줄이 나뒹구는 운동장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 당시 하교 시간이어서 일부 어린이들은 하교길에 파편과 불길에 휩싸여, 일부는 학교에서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숨졌다. 학생들은 낮 12시 직전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 1시쯤 다시 등교하기 때문에 낮 12시 10분에 발생한 폭발은 많은 어린이 희생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용천역 바로 옆 3층짜리 농업학교(대학)가 완전히 파괴돼 폭삭 주저 앉았다. 데이비드 실린 주평양 영국대사는 "농업학교는 예전에 건물이었다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고 말했다.
비참한 주민들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폐허로 변한 집터에서 부모를 잃어버린 듯한 어린이가 우는 모습이 목격됐고 터전을 잃은 주민들의 삶처럼 플라스틱 대야 등 집기가 거리를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무너진 집 앞에서 모든 의욕을 상실한 표정으로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있는 부자(父子)의 모습은 용천 주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한 구호요원은 "주민들이 벽돌 무덤으로 변한 집터에서 그나마 성한 가구와 집기를 찾아 소달구지에 싣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며 "이들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텐트나 구호 물품을 받지 못해 인근 지역의 친지 집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용소에 있는 8,000여명의 이재민 말고도 상당수가 인근지역으로 피난길에 올랐다는 얘기다. 한편 얼굴에 상처를 입은 용천 주민들이 길 거리에서 나다니는 모습이 목격돼 웬만한 부상자들은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북한 당국은 1,300여명의 부상자 중 370여 명만 신의주로 후송된 상태라고 밝혀 상당수는 간단한 응급치료만 받거나 자가 치료를 한 뒤 방치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복구 상황
용천 인근의 군단 규모 인민군들이 복구작업에 나섰다. 불도저와 트랙터 등이 폭발지점의 웅덩이를 메우고 있고 신의주의 의료진들이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제기구 요원들은 "방문 전 사상자들이 현장에서 말끔히 정리됐다"고 말해 북측이 1차 사상자 수습 및 구호작업을 완료했음을 시사했다.
주민들도 맨손으로 지붕 기와를 다시 얹고 리어커로 벽돌을 실어 나르면서 강인한 복구 의지를 내비쳤다. 아직도 쌀쌀한 북풍을 피하기 위해 어린이들과 아낙네들은 건물더미에서 땔감과 나무조각을 찾아 달구지에 싣고 있었다.
/단둥=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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