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 따뜻한 사람들일 것입니다."서울대가 난치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한 러시아의 핵물리학자를 무료로 시술해 준다. 국가 최고교육자상을 수상하는 등 러시아 핵물리학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는 러시아 국립극동대 핵물리학과 레오니드 라자레비치(55) 교수는 21일 한국에 도착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자마자 대학 관계자와 의료진에게 '쓰빠시바'(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낯선 이방인의 도움으로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 난치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됐다는 기대 때문인지 얼굴은 초췌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가 우측 폐혈관의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폐동맥 협착증에 걸린 것은 2000년 말. '폐동맥 색전 제거술'이란 대수술을 받아야 했지만 러시아 2곳의 심장병 전문병원에서는 이미 병세가 깊어 수술을 꺼려했다. 그는 미국 등 의료선진국에 수술 여부를 타진했지만 미화 5만달러(약 6,50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없어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약물치료에 의존했으나 숨을 쉬기가 더 힘들어지고 다리 마비 증세도 심해져 갔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 대학 블라디미르 쿠릴로프 총장이 백방으로 수소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쿠릴로프 총장이 보낸 편지 가운데 한 장이 지난달 서울대 정운찬 총장에게 도착했다. 편지에는 "한국의 의료진이 아니면 라자레비치 교수는 살 수가 없다"는 절박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1899년 설립된 극동대는 1900년에 세계 최초로 한국학과를 설립했으며, 쿠릴로프 총장도 각종 학회 참여를 위해 수차례 서울대를 방문하는 등 두 대학은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서울대는 서울대병원과 수차례 협의 후 수술만 이뤄지면 완치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체의 수술비용과 체류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답신을 러시아로 보냈다. 라자레비치 교수는 즉시 한국으로 달려와 현재 수술을 위한 정밀검사를 받고 있다.
정 총장은 "한러 우호증진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라자레비치 교수를 돕게 됐다"며 "그의 성공적인 수술과 빠른 쾌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라자레비치 교수는 입원실에서 "서울대의 온정에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사할 뿐"이라며 "완쾌돼 러시아로 돌아가면 한국 사람의 선한 마음을 꼭 알리겠다"고 말했다.
/황재락기자 find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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