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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혜초의 왕오천축국전-정수일 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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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혜초의 왕오천축국전-정수일 역주

입력
2004.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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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의 왕오천축국전정수일 역주 학고재 발행·4만8,000원

1908년 중국의 둔황(敦皇) 석굴을 뒤지던 프랑스 탐험가이자 동양학자인 펠리오는 먼지 더미 속에서 두루마리 책자 한 권을 발견했다. 표지도 저자 이름도 모두 떨어져 나가고 없는 고서였다. 이 책이 바로 신라 의 고승 혜초가 723년부터 4년간 인도와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둘러보고 쓴 견문록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었다. 그로부터 96년이 흐른 지금까지 이 책은 우리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었다. 원본은 파리 국립도서관에 꼭꼭 숨겨져 있었고, 몇몇 번역서로는 이 책의 진가를 알기 어려웠다.

'무하마드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70·사진) 박사가 국내 학자로는 처음으로 이 책의 역주서를 냈다. 이슬람사와 동서문명교류사에 정통한 그가 원문을 번역하고, 원문 분량의 10배에 해당하는 503개의 상세한 주석과 해제를 붙인 이 책은 그야말로 혜초의 기록을 꼭꼭 씹어 소화시켜 내놓은 듯한 역저라 할 만하다.

이 책을 내기 위해 지난 1년간 꼬박 매달렸다는 정씨는 '왕오천축국전'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3세기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의 '동유기', 14세기 아랍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등과 함께 세계 4대 여행서로 꼽는다. "남들의 무슨 '지(志)' '록(錄) '기(記)'도 좋지만 있지만 그보다 천배 백배 낫고 값집니다. 우리의 얼과 넋, 슬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요."

그는 책에서 혜초의 생애, 여행기의 발전과정과 내용, 서역기행의 노정과 문명사적 의미를 싣고, 원전을 내용에 따라 지역 단위로 40개를 구분해 번역문, 원문, 주석을 실었다.

책의 앞과 뒷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 발견된 원문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정 박사의 '괴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각국 왕성의 위치와 규모, 통치상황, 기후와 지형, 특산물, 언어, 종교, 음식 등을 총 6,000여 자의 한자로 압축해 담은 원문을 그는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안내한다.

예컨대 '호국'에 관한 기록에서 혜초는 "혼인을 막 뒤섞어서 하는 바, 어머니나 자매를 아내로 삼기까지 한다. …그것은 집안 살림이 파탄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다"로 적었다. 이에 대해 정 박사는 근친혼이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신봉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혼인제도로, 혈통이나 종교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혼인비용에 의한 재화의 족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밝히고 그 기원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왕오천축국전'이 축약본이거나 혹은 베껴쓴 사록본이라는 논란에 대해서는 불경주석집인 '일체경음의'의 어휘를 비교한 결과, 현존 판본은 3권으로 된 원본의 축약본이라고 보았다.

또 여행경로를 추적한 결과 혜초가 페르시아와 아랍까지 다녀왔다는 근거도 제시했다. 그는 "불후의 고전을 연구하는 일이 남들보다 한참 뒤져있어 마음 속에 응어리가 맺혀있었다"며 "앞으로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함께 국내 반환 운동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옌볜(延邊) 출신으로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졸업한 그는 평양외국어대학, 말레이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던 중 97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후 '이븐 바투타 여행기' '씰크로드학' 등 무게있는 번역서와 저작을 잇달아 냈으며, 2003년 4월 사면복권돼 지난 총선에서 처음으로 투표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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