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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개빈 멘지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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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개빈 멘지스 지음

입력
2004.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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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지음·조행복 옮김사계절 발행·2만5,000원

저자의 말이 맞다면 세계는 16세기에 중화제국이 될 뻔했다.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보다 71년 먼저 발견하고, 마젤란해협을 마젤란보다 98년 앞서 통과했으며, 호주를 제임스 쿡 선장보다 300년 전에 탐사한 주인공들이 중국인들이라니 말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다지만 뉴욕이 뉴 베이징으로 불리고, 기독교 대신 불교나 유교가 신세계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그의 주장은 매혹적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이러한 내용이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에서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1961년 중국의 위취현 교수가 '중국의 아메리카 발견'이라는 책을 쓴 이후 줄곧 언급됐고, 역사 교과서에도 중국 원정대의 존재는 나온다. 하지만 14년 동안 140여개국 900곳 이상의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지고 도서관과 박물관, 과학연구소, 주요 항구 등을 답사하며 내놓은 저자 개빈 멘지스(67)의 성과와 확신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영국 해군장교 출신으로 17년간 잠수함을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빈 저자가 신대륙 발견의 주인공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우연히 '주아네 피치가네'라는 해도를 보면서 시작됐다. 1424년이라는 연도가 표기된 이 해도에는 카리브해역이 상세히 묘사돼 있었던 것이다. 앞서 1403년 조선의 권 근, 김사형 등이 제작해 중국 황제에 바친 '혼일강리역대국지도'에는 아프리카의 동, 서, 남부 해안이 정확히 그려져 있었다. 콜럼버스를 비롯해 마젤란, 바스코 다 가마보다 앞서 누군가 그곳에 대한 탐사를 마쳐 지도를 만들었고, 유럽 탐험대도 그 지도를 보면서 뱃길을 잡았다는 이야기다.

15세기 초 항해를 통해 이처럼 정밀한 지도를 제작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저자는 그러한 역사적인 원정을 감당할 수 있는 물적 기반과 과학 지식, 선박 조건 및 항해 경험을 갖고 있었던 나라는 딱 한 곳, 중국(명나라)이라고 단언한다. 당시 중국은 600년간의 대양 탐험과 천문항법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1405∼1433년 7차례에 걸쳐 세계 원정을 떠난 해상왕 정화(鄭和·1371∼1435?) 함대를 주목한다. 정화의 대선단은 250척의 정크선과 이를 보좌하기 위한 3,500척의 기타 선박들로 이루어졌고, 승무원만 3만명에 이르렀다. 정크선의 크기는 전장 150m에 선폭이 60m이며, 이 함대는 바다에서 3개월간 버틸 수 있고, 뭍에 상륙하지 않고 7,200㎞를 항해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중국인의 각 대륙 진출과 교류를 입증하는 다양한 논거도 들이댄다. 남아메리카 남부 파타고니아에만 생존하다 약 300년 전 멸종된 동물 '밀로돈'이 1430년 중국에서 간행된 '이역도지(異域圖志)'에 나왔다든가, 고구마 옥수수 등 남미가 원산지인 17개 작물이 콜럼버스 이전에 인도와 아시아 등지에 전래됐다는 사실 등이다. 또 샌프란시스코 만 근처의 새크라멘토 강에서 발견된 난파선 부재에 대한 방사성탄소 측정결과 15세기 초의 것으로 확인됐고, 그 중 철제 중국 냄비와 양귀비 씨앗이 있었던 것 등을 들이대며 이래도 못 믿겠냐는 듯 다그친다.

저자는 결론에서 정화의 대함대가 출항한 지 석달 후 자금성에 벼락이 내려치지 않았다면, 황제(영락제)의 애첩이 죽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가 조금 더 오래 살고 정화의 함대가 항해를 계속했다면 중국이 세계의 주인이 됐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들이 잘못 생각하는 바람에 아메리카의 방대한 시장과 원료가 유럽에 넘어가고 세계사의 헤게모니를 빼앗겼지만 역사적 사실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002년 3월 영국 런던 왕립지리학회에서 발표된 이러한 주장은 36개국에 생중계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도 있다. 인디언의 대표적인 기호품으로 나중에 콜럼버스가 가져온 담배나, 남미에 널려 있었다는 황금에 대해 중국 원정대는 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서구중심적인 역사관을 서구인의 손으로 깨고 있다는 점에서 통쾌하다. 지난 해 나온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까치 발행)이나 '바다의 실크로드'(청아 발행), 1999년에 나온 '거울에 비친 유럽'(새물결 발행) 등과 비교해 읽을 만하다. 중화주의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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