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4월24일 전국 6개도 연맹 산하 72개 군농민회를 묶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결성됐다. 초대 의장은 권종대. 이 날 발표된 전농 강령은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에 바탕을 둔 농업생산 기반 확충, 농축산물 수입개방 반대와 식량 주권 수호 같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강령의 마지막 부분에는, 정치적 민주화가 막 시동을 건 시기에 만들어진 사회운동 단체답게, '나라의 민주화, 민족의 자주화, 조국의 평화통일'도 삽입하고 있다.농업이 세상의 가장 으뜸 되는 근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명제는 오래도록 한국인의 감수성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 물결 속에서 이 말은 실감을 크게 잃었다. 산업화는 농민분해의 다른 이름이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 인구 대다수는 도시노동자로 흡수되어, 오늘날 한국의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8%에 지나지 않는다. 농민들조차도 이젠 한국을 농업국가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전농 같은 농민운동 단체가 만들어져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농민들의 절대적 가난 못지않게 사회의 다른 부문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에도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농업과 다른 부문의 이해 관계가 늘 나란히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 농민운동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전농은 강령에서 '민족자존'과 '식량주권'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농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환기를 민족주의 정서에 포개보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이 농민 이외의 시민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는 또렷하지 않다. 이 달 초에 발효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만 해도, 그것이 한국의 농업 기반을 잠식할 가능성을 품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산업 종사자들이나 농산품 소비자들에게 득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착잡하다. 지난 1월에 날아든 권종대 의장의 부음은 마치 한국 농업의 부음처럼 들렸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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