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겠다.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있다. 피아노 김경옥, 바이올린 유은혜, 클라리넷 권록현으로 이뤄진 '트리오 한'이다.
그들이 창단 10주년을 맞았다. 꾸준히 국내외 현대음악을 소개하고, 국내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해 초연해 왔다. 그동안 위촉 초연한 작품만 30곡 가까이 된다.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고 별로 인기도 없는 현대음악으로 자리를 굳혔으니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10년 간 악전고투했죠. 스폰서도 없고, 대중적 관심도 적어서. 연주의 질을 계속 끌어올려 인지도를 높이는 방법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우리의 무대를 기다리는 고정 팬이 많이 생겼고, 작곡가들로부터 외국에 내놔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게 되었지요."(권록현)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누군가는 현대음악을 연주해야 한다는 사명감만으로 버텨온 것은 아니다. 현대음악 연주가 '재미 있어서' 해왔다고 입을 모은다. "낯선 현대음악, 특히 음반도 아예 없는 초연 작품을 연주하려면 악보 보고 연구하는 수밖에 없어요. 호기심과 탐구의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죠. 그래서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지요."(김경옥) "현대음악은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에 비해 표현이 훨씬 자유롭고 다양해서 재미있어요."(유은혜)
대체로 객석이 썰렁한 게 현대음악 연주회인데, 트리오 한의 공연은 꽉꽉 차곤 한다. 새로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스무 번 이상 연습하는 등 프로다운 근성과 열정으로 무대를 준비함으로써 작품을 써준 작곡가나 새로운 음악을 들으러 온 청중이 모두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트리오 한에 작품 초연을 맡긴 작곡가는 일단 안심하고, 초연 자체에만 의미를 둔 엉터리 현대음악 연주나, 작곡 동인들의 집안 잔치성 작품발표 연주회에 질린 사람들 가운데 트리오 한의 무대라면 가 보겠다고 기다리는 고정 관객도 생겼다.
트리오 한은 26일 오후 7시 30분 여의도의 영산아트홀에서 창단 10주년 기념연주회를 연다. 연주곡은 미요의 '모음곡 op.1576', 하차투리안의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3중주', 바르톡의 '콘트라스트',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의 독특한 편성으로 이뤄진 트리오 한에 가장 잘 맞는 곡들을 골랐다. 때맞춰 한국 작곡가들의 작품을 모은 기념음반도 내놨다. 소니 레이블로 나온 음반에는 김기범 김성기 박인호 백승우 구본우 정태봉 이영자 등 7인의 창작곡을 담았고, 악보 CD를 따로 넣었다. 국내 연주단체가 한국 작곡가들만의 작품으로 메이저 음반사에서 음반을 내기는 처음이다. (02)545―2078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