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34·사진)씨는 세번째 소설집 '무정한 짐승의 연애'(문학과지성사 발행)를 두고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문장과 스타일을 얻은 뒤 처음 나오는 책"이라고 했다. 그는 이전의 소설집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과 '달의 뒤편으로 가는 자전거여행'의 문장을 손본 개정판을 최근 냈다. "그러면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문장을 갖게 됐다. 새 소설집은 그런 작업의 결실"이라고 밝혔다.5년 만의 창작집이다. 아홉 편의 소설 모두 '짐승'을 화두로 삼았다. "20세기는 인간이 짐승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웠다. 종족을 살육하는 끔찍한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이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21세기에 지난 세기의 짐승스러움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다."
단편 '해시계를 상속받다'는 그의 문제의식이 모아진 작품이다. 북파 간첩이었던 아버지는 공작을 하던 중 인육을 먹었다. 아버지는 수도원에 들어가 묵언수행을 한다. 검사인 화자는 다른 사람의 죄를 벌하면서도, 부친을 벌할 수 없다. 부친은 20세기 짐승 같은 인간의 대표단수다. 인간은 자기 안의 짐승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면서도 스스로를 비판할 수 없다.
단편 '초식동물의 음악'에서 화자는 어두운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펜팔 친구인 호주 이민자 해수와 함께 추억을 나눠왔다. 성인이 되어 편지가 아니라 얼굴을 맞대게 된 두 사람은 우정을 이어간다. 화자는 이혼하고, 해수는 자살을 기도하는 등 아픔을 겪고 서로를 위로하면서도 두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너무 일찍 이상한 방법으로, 굉장히 어두운 얘기들을 나눴어. 그래서 그만 이렇게 돼버린 거야." 작가가 보기에 어떤 이들은 짐승의 몸을 가졌지만 가련하고 연약하고 상처받기 쉽다. '어느날 불현듯 스스로가 금방 목구멍으로 넘어간 한 줌의 기억조차도 믿지 못해 자꾸자꾸 되새김질하는 소심한 초식동물로 여겨진다면. 왜 유순한 초식동물의 각을 뜨고 피를 뿌려, 교활하고 무정한 육식 동물의 죄를 씻어야 하는지 신(神)에게 따져 묻고 싶다면'이라는 가정은 자신에게 묻는 것이기도 하다. 초식동물은 물론 문학의 다른 이름이며, 작가가 묻는 것은 이 시대에 문학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21세기의 문학'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지나간 20세기 문학의 정신이 유효하다는 것, 의미있게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내가 맞이한 21세기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그럼으로써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0대 중반의 젊은 소설가이지만 이씨는 등단 14년째를 맞은 작가다. 시로 등단한 그는 최근 두번째 시집을 내기도 했다. "시를 쓸 때 치유 받는다. 시 정신을 놓지 않는 한 처음의 진지한 마음, 뜨거운 열정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의 소설의 매우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은 그런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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