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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기자의 책이야기/국정원, 감추는 게 능사인가

입력
2004.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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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관은 항상 호기심의 대상이다. 때문에 영화와 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기도 한다. 정보기관원 출신이 쓴 다큐멘터리나 르포는 픽션 이상으로 흥미진진하다. 최근 나온 '나는 검증한다 김현희의 파괴공작'(노다 미네오 지음, 창해 발행)과 '악마와의 동침'(로버트 베어 지음, 중심 발행)은 바로 그런 책이다. '나는 검증한다…'가 1987년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사건에 얽힌 안기부의 역할과 의혹을 추적했다면, '악마와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 직원이 자신의 체험과 정보를 토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추악한 유착관계를 고발하고 있다.두 책의 내용과 출간 후 벌어지는 일은 우리 정보기관의 의식과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나는 검증한다…'는 현재 송사에 휘말려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 달 책이 출간된 직후 국가정보원 조사관 5명이 출판사 대표를 상대로 1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하는 동시에 판매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김현희의 소지품과 현장탐문 등을 통해 그가 북한공작원임을 확인했고, 현재도 이같은 사실을 증명할 진술과 증거가 있음에도 출판사가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책을 출간한 전형배 출판사 대표는 "858기 사건이 지속적으로 국민적인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김현희가 북한공작원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않고 오히려 소송을 냈다"며 유감을 표했다.

반면 2002년 나온 '악마와의…'에서 저자는 워싱턴 정가와 사우디 왕가의 거래실상을 실명과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폭로했다. 책에는 1976∼97년 20여년 동안 CIA 공작관으로 아랍지역을 누비면서 직접 목격한 현장과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법규에 따라 CIA의 검열을 받고 책 곳곳이 검은 줄로 메워져 있긴 하지만, 민감한 부분들을 공개하는 배짱과 시스템이 놀랍다.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미얀마 해역 상공에서 홀연히 자취를 감춘 대한항공 858기. 아직까지 폭파라고 단정할 만한 유해나 유류품이 나오지 않고 수사기록에 대해 온갖 억측과 의혹도 따라다닌다. 소송이 능사는 아니다. 국정원이 떳떳하다면 조사과정과 그 전말을 밝히는 책을 내면 어떨까.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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