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4월23일 영국 시인 루퍼트 브루크가 28세로 병사했다. 그가 죽은 곳은 그리스 인근 에게해의 스키로스 섬이었고, 그는 영국군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었다. 젊은 나이로 전쟁터에서 죽은 데다가 다섯 편의 '전쟁 소네트' 때문에 브루크에게는 '애국 시인'의 이미지가 짙게 배어있지만, 실상 그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생의 약동을 선양하며 필멸의 고뇌로 몸을 떤 탐미주의 시인이었다. 그 자신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기도 했다. 24세 때인 1911년 브루크가 처녀 시집을 냈을 때, 다섯 살 위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는 그의 문학세계를 신이교주의(新異敎主義)라고 불렀다.그러나 가장 애국적인 시인이란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끝간데까지 밀고 나간 시인이라면, 브루크를 애국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엉뚱한 일은 아니다. '밤 여행' '매력' '먼지' '위대한 연인' 같은 작품들은 영어로 쓰여진 가장 아름다운 운문들로 꼽히면서 브루크를 키츠, 셸리, 브라우닝, 블레이크 계열의 위대한 서정 시인으로 우뚝 세웠다. 브루크는 산문에도 손을 대, 평론집 '존 웹스터와 엘리자베스조 연극'과 헨리 제임스의 서문을 붙인 '미국에서 보낸 편지'가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다.
브루크는 워릭셔주 럭비 출신이다. 유명한 퍼블릭스쿨 가운데 하나인 럭비스쿨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공부했다. 라셀스 애버크럼비, 존 드링크워터 등의 동료 시인들과 함께 동인지 '뉴 넘버스' 활동을 할 때가 그의 짧은 문학적 생애의 전성기였다. 브루크의 모교인 럭비스쿨은 흔히 럭비라고 줄여 말하는 럭비풋볼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럭비의 기원을 끝까지 추적하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로까지 거슬러올라갈 수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로서의 럭비 규칙이 만들어진 것은 19세기 럭비스쿨의 풋볼 경기에서다.
고종석/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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