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선거의 하나였다. 5월 30일 개원하는 17대 국회는 한국이 민주화되기 시작한 이후 최초의 리버럴한 국회다.선거 결과는 놀랍지 않았다. 이미 사전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급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선거에서 패배할 것으로 보였다. 한나라당은 설득력 있는 혐의를 토대로 했다기보다는 당파성을 고집하는 차원에서 논란 많은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고, 우리당은 의장이 60세 이상은 투표할 필요가 없다고 발언했다.
결과가 분명히 드러난 지금 이번 투표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선, 굿 뉴스다. 민주적 과정의 제도화가 지속되고 강화되었다. 국회 탄핵 과정에서 꼴 사나운 몸싸움이 있긴 했지만 이는 결코 작은 성취가 아니다. 비록 당선자 53명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를 앞두고 있지만 민주적 절차는 잘 작동했다.
정치의 미래가 젊은 세대 손으로 넘어갔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좀더 민족주의적이고 자부심이 넘치고, 외교 정책에서 미국의 절대우위나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 또는 기존 한미 관계에 대해 좀더 회의적이다. 이해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엄청난 변화에 대해 미국은 예의주시하고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 밖에 중요한 측면들이 있다. 첫째, 지역주의는 죽지 않았다. 예상대로. 한나라당 의석의 절반 이상이 전통적으로 보수주의의 본거지인 부산, 대구, 경상도 지역이다. 광주와 전라도는 예상대로 압도적으로 우리당을 선택했다. 궤멸된 민주당이 다섯 석을 건진 유일한 지역은 전남이었다.
둘째, 여성은 여전히 주변적이다. 일부에서는 39석, 전체 의석의 13%가 여성이라는 점에 환호했지만 겉치레일 뿐이다. 비례대표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해야 한다는 법 때문이었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여성 의원은 10명, 전체의 2.3%에 불과하다.
셋째, 처음으로 의미 있는 노동자 대표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특히 민주노동당이 정당 투표에서 13%를 확보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서 매우 큰 성취이다.
넷째, 정당은 여전히 명이 짧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정당이 다른 당과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이는 정강정책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당과 민노당의 등장으로 달라지고 있다. 과거 반공 때문에 금기시됐던 이데올로기 문제가 이제 정치권으로 진입했다.
다섯째, 국내 정책에는 어떤 변화가 올까? 노동계가 더 큰 역할을 하게 되고 정부가 노동 관련 이슈를 효율적으로 다루는 데 있어 심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외국 투자자들이 앞으로의 경제 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근거가 있다.
여섯째, 외교 정책은? 대미 관계 등 외교 정책 형성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지지기반(젊은층과 리버럴)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과는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좀더 동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긴장이 생길 것이다. 일곱째, 조용한 반미 정서는 계속 커져 갈 것 같다. 미국이 한국을 좀더 존중하고 좀더 관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 대통령은 분명히 힘을 얻었다. 그럴 것 같지는 않지만 만일 탄핵이 된다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것이고 전망은 불투명하다. 탄핵이 되지 않는다면 노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한나라당에 대해 보복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문제다. 그렇게 되면 늘 악다구니하는 정당들 간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이익 차원에서는 미국과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양당이 정책을 하나로 조율해 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하려면 노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점괘도 좋지 않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통적인 틀을 수없이 깨 왔다. 그런 노력에 불을 당긴다면 한국 정치에 주요한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될 것이다.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아시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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