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깃구깃한 셔츠 차림은 보통 무신경이나 게으름의 소치로 여겨졌다. 캐주얼한 면바지나 셔츠라 할지라도 새 옷처럼 다림질을 해서 입으면 '멋 좀 낸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웰빙 트렌드에 힘입은 내추럴리즘이 멋의 기준마저 바꾸고 있다. 빨아서 그냥 툭툭 털어서 입고 나온 듯 구김이 있어야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느낌이 살아난다는 것이다. 자연미를 위해 인공적으로 주름을 만드는 역설. 그래서 패션은 재미있다.
일부러 구깃구깃 주름을 넣은 이른바 크링클(Crinkle·주름지다) 셔츠가 올 봄, 여름 최고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백화점에 가면 캐주얼 브랜드부터 고급 캐릭터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매장에 크링클 셔츠를 안 걸어놓은 곳이 없을 정도다.
얇은 면이나 거즈, 살짝 비치는 시폰, 물 흐르듯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실크 등으로 만들어진 크링클 셔츠는 오글오글하게 잡은 주름이 빛의 각도에 따라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최대 매력. 신원 베스띠벨리의 경우 전체 셔츠류의 25% 이상을 크링클 소재로 채우고 있다.
크링클 패션의 인기는 웰빙 트렌드에서 뻗어나온 내추럴리즘과 청바지 문화에 크게 힘입었다. 베스띠벨리 디자인실 박성희 실장은 "내추럴 무드의 강세로 평평한 평면직 보다는 좀 구겨지고 바래고 약간은 헌 것 같은느낌의 소재가 각광받는 추세"라며 "특히 청바지패션이 붐을 일으키면서 헌 청바지에 받쳐입는 셔츠류로 크링클이 새롭게 부각되고있다"고 말했다. 또 패션정보업체 인터패션플래닝 트렌드컨설팅팀 이경희 수석은 "과거엔 셔츠가 구겨지면 질색을 했지만 최근엔 삶 자체의 퀄리티를 중시하는 보보스적인 감성에 빈티지 로맨티시즘이 더해지면서 구김이 여유로움의 상징으로 대접받고있다"고 풀이했다.
손질이 간편하다는 것도 크링클 소재의 인기에 한 몫 한다. 이경희 수석은 "이지케어(easy care)는 캐주얼이라는 메가트렌드의 중요 개념 중 하나로 세탁 횟수가 잦은 봄·여름용 소재중 크링클 만큼 이 개념을 충실하게 뒷받침하는 소재도 드물다"고 말했다.
세탁을 해서 그냥 툭툭 털어서 입어도 좋은 만큼 소재는 면이나 마, 면과 마 혼방소재, 면과 실크 혼방소재 등이 주로 쓰이고 빨리 마르고 시원한 폴리에스테르 혼방도 많이 나왔다. 크링클 가공은 이런 원단을 양옆에서 잡고 꽈배기처럼 꼬아 고무줄로 묶은 뒤 고열을 가하고 급속 냉각, 불규칙한 주름을 만드는 것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크링클 셔츠는 연한 분홍색이나 연노랑색, 베이지색 등에 잔잔한 꽃무늬나 스트라이프를 넣어 전원풍의 이미지를 살린 것부터 검정색이나 보라색 등 강렬한 색상에 커다란 연꽃이나 대나무 문양을 넣어 동양적인 에스닉풍으로 만든 것 등이 주종을 이룬다. 레이스를 덧대거나 리본을 달아주는 등으로 로맨티시즘을 강조한 것들도 눈에 띈다.
크링클 셔츠를 멋지게 연출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우선 '찰떡궁합'으로 평가받는 데님소재와의 매치. 청바지 위에 자연스럽게 걸치되 아랫 단추 한두개를 풀어서 배꼽이 살짝 엿보이게 하면 여유로운 멋이 강조된다. 블랙이나 베이지 컬러의 깔끔한 정장에 포인트를 주는 것으로도 제격이다. 정장 재킷 안에 촘촘한 꽃무늬의 크링클 블라우스나 셔츠를 매치하면 평면 셔츠에 비해 훨씬 세련된 느낌을 살릴 수 있다. 치마 위에는 무늬 없는 파스텔톤의 크링클 블라우스를 곁들이면 로맨틱하고 성숙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