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1세 어머니의 험난했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이 일본에서 완성돼 내달 각각 개봉될 예정이다.사쿠라영화사가 만든 '해녀 양씨'는 오사카(大阪)에 사는 양의헌(梁義憲·87)씨의 이야기다. 1916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941년 남편과 함께 일본에 왔다가 1944년 미군의 공습이 심해져 일단 제주도로 돌아갔지만 1948년 4·3 사건이 터져 다시 일본으로 밀항했다.
4·3의 혼란 속에 네 살짜리 둘째 딸을 제주도에 두고 왔고 1960년대 재일동포 북송 때 아들 셋이 북한으로 건너갔다. 현재 일본에는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살고 있어 3국 이산가족이다.
10년 전에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은 조총련계 민족학교 설립 운동에 매달려 집안에 돈 한푼 들여놓지 않았다. 양씨는 70세까지 일본 전국을 돌아다니며 해녀 일로 돈을 벌어 일본의 자녀들을 키우고 남북의 자녀들에도 보냈다.
북의 자식을 만나기 위해 20여 차례나 북한에 다녀왔고 2002년 53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도 고향을 방문했다. "우유 한번 사먹어 본 적이 없다"는 양씨는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으니 나는 나쁜 에미"라고 말한다.
후지TV가 제작한 '하루코'는 역시 제주도 출신인 가네모토 하루코(金本春子·87·한국명 정병춘)씨의 일생이다. 12세에 봉제공장 여공으로 일본에 왔다가 17세 때 같은 제주도 출신 남편과 결혼했다. 방탕 벽의 남편은 가정을 돌보지 않아 공습으로 빈 집을 전전하며 고물수집, 노점상으로 3남4녀를 혼자 키웠다.
해방이 돼 고향에 돌아갔지만 남편의 방탕은 여전했고 먹고 살 것도 없었다. 장녀와 4녀는 남편에게 남기고 나머지 자녀를 데리고 일본에 다시 왔다. 한글도 일본어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그는 파칭코 경품의 불법 환전으로 생계를 꾸렸고 37회나 체포됐다. 전기, 수도도 없는 도쿄(東京) 신주쿠(新宿) 한 켠의 적빈(赤貧)을 견디지 못한 차녀는 가출을 해버렸고 3녀는 '지상낙원'이라던 북한으로 갔다.
그는 뼈가 녹아가며 번 돈을 북한에 송금해 훈장까지 받았지만 조총련의 카메라맨을 했던 장남은 20년 전 한국 국적으로 바꾸었다.
두 영화를 만든 일본인 제작진들은 "두 어머니의 일생 자체가 그 어느 영화보다 영화적"이라고 말한다.
불행한 민족사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는 것은 여성, 어머니들이다. 어머니들의 고난의 행군을 끝장내고 민족의 큰 효도를 올릴 방도를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
신윤석 도쿄 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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