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에서 군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훈련 혹은 행군 도중에 캐 먹던 더덕에 관한 몇 가지 추억이 있을 것이다. 사방 50㎙까지 퍼지는 향긋한 더덕 냄새에 취하고, 흙이 묻은 더덕의 껍질을 벗긴 뒤 고추장에 살짝 찍어먹으면 산삼이라도 먹은 양 힘이 났던 기억, 군생활의 잊지 못할 활력소였다.산행 혹은 여행길에 목을 축이려고 토종음식점에 들어가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 주문한 더덕구이는 그 시절의 향수를 끄집어내기에는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부분 밭에서 키운 것이어서 향이 거의 없는데다 맛도 산더덕에 뒤지기 때문.
문득 산더덕의 추억이 그리워진다면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용문산자락으로 향하자. 더덕향으로 가득한 이 곳에는 지금 6~8년된 산더덕을 캐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수도권에서 출발, 6번 국도를 따라 양평군 양수리까지 간 뒤 북한강 물줄기와 나란히 하는 363번 지방도를 따라 청평 방향으로 10㎞ 정도 가면 서종면 문호리와 만난다. 용문산 산더덕 영농조합에서 운영하는 산더덕농장이 펼쳐지는 곳이다. 1990년 조합회장 조남상(53)씨를 비롯, 9명의 조합원이 10년 넘게 더덕씨앗을 뿌려 일궈낸 결실이다.
이 일대에 조성된 더덕산의 규모는 대략 70만평. 산 전체에 더덕이 널렸지만 아무 곳에서나 더덕을 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삼과 모양 및 효능이 비슷해 사삼(沙蔘)이라고도 불리는 더덕이지만, 5년 이상 돼야 인삼못지 않은 효과가 있다. 6년산 더덕만 캐도록 하는 이유다.
산 들어서면 향긋한 더덕 향 진동
조합원의 안내에 따라 6년산 더덕체험장을 찾았다. 입구에서 우선 장갑과 괭이, 더덕을 담을 봉투를 받고 본격적인 작업에 나섰다. 경사가 40도에 가까운 험한 산자락이지만 이미 더덕을 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98년 4만평 규모의 산능선에 40톤 분량의 더덕씨를 뿌렸다고 하니 도대체 얼마만큼의 더덕이 자라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산에 오르자 마자 더덕향이 진동한다. 처음에는 더덕이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흙더미 위로 더덕순이 봉곳하게 솟아있다. 괭이로 흙을 살살 걷어내니 더덕이 모습을 드러낸다.
오성봉(50ㆍ경기 이천시 설성면)씨는 “어린 시절 뒷산에서 더덕을 캐 먹던 생각이 나서 해마다 이 곳에 들른다”며 “이 곳에서 캐는 더덕은 야생더덕에 비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한 곳에서는 아예 소주파티가 벌어졌다. 40대 후반의 아저씨 5명이 산자락에 앉아 즉석에서 캔 더덕껍질을 벗겨 낸다. 가지고 온 고추장과 버무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장전수(48)씨는 “동네 친구들끼리 나와서 경사진 산을 오르니 운동도 되고 스트레스도 풀수 있어 좋다”며 “여기에 영양가있는 더덕까지 얻으니 일석삼조가 아니냐”며 즐거워한다.
곳곳에서 ‘심봤다’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에는 찾기 어렵지만 요령을 알고 나니 더덕 캐는 속도가 빨라진다. 초보자라도 1시간이면 1㎏이 넘는 더덕을 캘 수 있다. 물론 자신이 캔 더덕을 모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별도의 참가비는 없지만 더덕을 가져가려면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한다. 1㎏에 4만원. 이 곳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산에 심어진 8년산 더덕은 1㎏에 6만원에 거래된다.
아빠는 추억 캐고 아이는 자연 배우고
다소 비싸지만 이유가 있다. 영농조합 조세연 실장은 “이 곳의 더덕은 야생 산더덕과 동일한 환경에서 재배됩니다. 산더덕 씨를 뿌린 뒤 화학비료는 물론 농약과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대신 사람이 직접 풀을 뽑고 큰 나무를 잘라내 더덕이 자연발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고 있지요”라고 말한다.
속성재배로 씨를 뿌린 지 1~2년 만에 캐낸 밭더덕이나 수입더덕에 비해 품질면에서 월등해 비싼 만큼 값어치를 한다는 것이 조실장의 설명이다. 대신 1㎏ 이상 구입하는 고객에게는 더덕즙이나 더덕비누를 무료로 제공한다.
조합측은 행사에 참가할 수 없는 일반인을 위해 더덕을 재료로 한 장아찌, 강정, 차, 즙 등 다양한 먹거리와 비누 등 다양한 상품을 개발, 인터넷을 통해 판매도 하고 있다.
www.powerdd.com (031)771-5955. (02)453-4290.
/양평=한창만기자 cmhan@hk.co.kr
■ 더덕, 어떻게 먹나
한방에서 말하는 더덕의 효능은 무궁무진하다. 위와 폐를 보하고, 아랫배가 아픈 것을 다스리며 오장에 좋다(본초강목), 오한과 발열을 낫게 하며 잘 놀라거나 명치 끝이 아플 때 효험이 있다(향약집성방), 고름을 빼고 붓기를 가라앉히며 해독작용을 한다(동의보감) 등 여러 문헌에 그 효능이 설명돼 있다. 이밖에 편도선염, 인후염, 기침, 거담 등에도 약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더덕은 예부터 약재보다는 음식으로 많이 이용돼왔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더덕양념구이. 껍질을 벗기고 30분 정도 물에 불려 쓴 맛을 뺀 뒤 복어처럼 편편하게 편 다음 고추장, 마늘, 다진 파 등을 섞은 양념장에 발라 석쇠에 구워낸다. 반찬으로도 좋고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가늘게 찢은 더덕에 양념을 살짝 버무린 더덕생채, 말린 더덕을 고추장통에 담아 3개월만 절인 더덕장아찌도 반찬거리로 알맞다. 튀김가루에 묻혀 튀겨낸 더덕튀김도 별미. 닭백숙에 인삼대신 더덕을 넣어도 맛있다.
더덕을 재료로 한 물김치나 소박이는 입맛을 잃기 쉬운 봄철 식탁에 내놓을 만 하다. 더덕에 찹쌀가루를 묻혀 튀긴 뒤 조청이나 꿀을 살짝 버무린 더덕강정은 어린이의 간식에 적합하다.
품질좋은 더덕을 골라 깨끗이 씻은 뒤 소주에 3개월정도 담궈두면 더덕주가 된다. 더덕 특유의 향이 술 맛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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