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박물관 기행-인사동 '재미있는 성문화 박물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박물관 기행-인사동 '재미있는 성문화 박물관'

입력
2004.04.23 00:00
0 0

서울 종로구 인사동 네거리에 있는 ‘재미있는 성문화박물관’. 입구에 굵은 힘줄을 뽐내는 거대한 남근석이 턱 버티고 선 이 곳으로 지난 16일 여대생 10여명이 찾아왔다.전시관 2층에 전시된 요상하게 생긴 나무 막대기 앞에 설 때만 해도 쑥스러운 눈빛을 주고받던 이들. 하지만 “성적으로 억압 받던 조선시대에서 여성들이 암암리에 이용하던 자위기구”라는 큐레이터의 설명이 시작되자 호기심이 발동하는 듯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이화여대 중문과 학생들로 ‘중국문화의 이해’ 강의의 현장학습 시간이었다.

“중국은 입식 문화라서 그런지 중국 춘화에는 요즘의 러브체어기 같이 도구가 이용되는 장면이 많이 나오죠.” 꽤나 낯 뜨거운 춘화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지만 부끄러워하거나 장난스러운 기색 없이 진지하다. 류소진(21)씨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무척 흥미롭다”며 “이렇게 직접 드러내고 이야기를 하니 성문제가 훨씬 건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성문화박물관’은 은밀한 욕망과 이상야릇한 추측으로 왜곡된 우리의 성문화를 당당하게 광장으로 끌어내 톡 까놓고 이야기 하는 곳이다. 지난해 5월 삼청동에 ‘동양 성문화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가 올 2월 인사동으로 옮기면서 이름도 조금 바뀌었다. 전시관 2,3,4층에 우리나라, 일본, 중국, 네팔, 인도 등 주로 동아시아의 성문화 유물이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2층부터 눈을 어디 둬야할지 모를 정도로, 남녀 모조 성기가 버젓이 관람객을 맞는다. 아들 낳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담긴 기자석(祈子石)이나 2,000여년전 중국에서 여성 자위기구로 사용됐다는 청동 모형 성기 등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다. 춘화나 성행위를 묘사한 인형인 춘의는 한층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

성기를 실제보다 과장해서 그린 일본의 춘화, 다양한 체위 변화가 엿보이는 중국의 춘화, 소품에 신경을 써 분위기 연출에 세심한 배려를 한 한국의 춘화 등 한ㆍ중ㆍ일 3국의 춘화 스타일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다. 종이 뿐 아니라 도자기, 상아, 뼈 등 춘화의 재료도 다양하다.

낯 뜨겁다면 낯 뜨거운 이런 유물을 수집한 이는 바로 신영수(49) 관장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 20년간 모은 중국 고대유물 2,117점을 기증해 화제가 된 사람이다. 사실 신 관장은 딱히 성문화라기보다, 거의 모든 유물에 관심을 가진 소문난 수집가이다.

2000년 ‘티베트박물관’을 시작으로, 2002년 ‘작은차 박물관’, 지난달 ‘아름다운 차 박물관’을 열었고, 앞으로도 스키 등산 박물관과 구식화기 박물관 등을 오픈할 계획이다. 전공은 농학이었지만, 대학 때부터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30년동안 거의 외골수의 수집가 인생을 걸어왔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젊었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 박물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유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어요. 그 안에서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지고요.” 그래서 과거 레스토랑 사업으로, 지금은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버는 돈을 족족 유물 수집에 쏟아부었다. 신 관장은 자신의 수집벽에 대해 “하나의 병이겠죠. 하지만 어떤 물건에 애정이 깃들면 안 살 수가 없게 되죠”라고 말했다.

성문화 박물관을 열기로 마음 먹은 것은 10년 전. 파리에 섹스박물관이 들어선다는 보도를 본 뒤 국내에도 성 박물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해외의 춘화나 성기구를 국내로 들여오는 과정에서 몰수당하는 수모를 겪고 박물관 오픈 과정에서 주변 가게의 항의를 받기도 했지만, 음지의 성을 양지로 드러내는 것이 청소년의 성교육에도 더 좋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해외의 다른 성 박물관은 포르노 역사관의 성격이 짙지만, ‘재미있는 성문화 박물관’은 보다 성찰적이다. 종교나 민속 등 우리 동양문화 속에서 면면히 내려온 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전시관 한쪽에 들어선 인도 시바신의 남성 성기가 단지 섹스만이 아니라, 창조의 에너지를 뜻하는 것처럼.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이용방법

서울 종로구 인사동 사거리 부근 통인가게 맞은편 골목. (02)733-3239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관하며, 휴관일은 없음. 입장료 5,000원.

■이용 백태

재미있는 성문화 박물관의 가장 큰 애로점은 뭘까. 성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 신영수 관장은 “공짜 심리가 가장 큰 문제”라고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성문화박물관의 입장료는 5,000원인데, 문턱까지 왔다가 입장료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자면 입장료를 받는 것이 당연. 하지만 인사동 갤러리의 대부분이 무료관람제를 채택하다 보니 이에 맛들인 사람들이 유료라고 하면 일단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문화박물관도 관람료로는 운영비의 일부밖에 충당하지 못한다. “박물관을 해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수집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신 관장은 “돈을 내더라도 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자보다 여성 관람객이 더 많은 것도 흥미로운 점. 박물관측은 남자 대 여자 관람객이 비율이 3대 7 정도로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전했다. 친구들끼리 오지만 여성 혼자 오는 경우도 상당수라고.

박물관에 와서 가장 즐거워하는 부류는 노년층이다. 유물을 꼼꼼히 살피며 거의 2~3시간씩 구경하고 간다고 한다. 신 관장은 “아직은 성박물관 관람문화가 정착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대표적인 방문지로도 만들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