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컬렉션이 개막한 16일 낮, 첫 이벤트로 열린 디자이너 손정완씨의 패션쇼장. 언론과 VIP고객들, 학생과 일반인 등으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행사장에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이미 시작 시간을 20분 남짓 넘긴 상태여서 당연히 행사 지체에 대한 사과방송일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었죠. “패션쇼 중 허가받은 촬영단 외에는 관객석에서 디카나 폰카로 촬영하는 것을 삼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안내방송은 이례적으로 세번이나 반복됐습니다.
드디어 행사장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본격적인 패션쇼 무대. 그제서야 왜 세번이나 촬영금지 방송을 해야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모델들이 캣워크를 걸어나올 때마다 관객석 이곳저곳에서 카메라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렇지않아도 무대로 강렬하게 내리쬐는 조명에 눈이 피곤한데 사방에서 번쩍 번쩍 하니까 정말 견디기 힘들더군요.
문제는 단지 ‘몰입을 방해한다’는 데서 그치지 않았어요. 같이 있던 한 패션인은 “패션디자인도 일종의 창작품인데 디카나 폰카로 마구 촬영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분개하더군요.
샤넬이나 랄프 로렌 등 해외 유명브랜드의 패션쇼에서는 등록된 사진작가 외에는 절대 객석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돼있죠. 디자인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막기위한 것이지요. 또 미국의 아제딘 알라야 같은 디자이너는 아예 패션쇼에 언론을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프레스를 통해 디자인이 공개되는 것조차 막겠다는 것이죠.
문제는 더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극대화해 보여주는 무대인 만큼 노출이 심할 때가 많은데 ‘의도를 가진’ 익명의 관객이 ‘그림이 되는’ 모델들만 촬영해 인터넷 음란사이트 등에 무작위로 배포할 경우 모델이나 디자이너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실제로 지난 시즌 춘하컬렉션에 섰던 한 톱모델은 상반신이 완전 노출된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떠도는 바람에 심리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고 토로한 적도 있었지요.
디카나 폰카의 극성은 이후 다른 디자이너들의 쇼에서도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마치 ‘하지 말란다고 안해?’라는 것 같았어요. 문화민족의 자긍심이니 OECD가입국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빈약한 구호인가 싶었습니다. 개인의 편의를 앞세워 공공의 질서나 규범을 무시하는 이기주의는 도대체 왜 이 땅에서 사라지지않는 걸까요!
/이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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