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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89>하그리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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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89>하그리브스

입력
200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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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 4월22일 제니 방적기의 발명자 제임스 하그리브스가 노팅엄에서 작고했다. 68세였다. 랭커셔주 블랙번 출신의 하그리브스가 평범한 방사공(紡絲工)으로 생을 마치지 않고 역사에 또렷한 이름을 남긴 것은 그의 딸 제니 덕분이었다. 그는 1764년께 제니가 실수로 쓰러뜨린 방차(紡車)의 움직임에 착안해 최초의 실용적 방적기를 발명했고, 이 기계를 제니 방적기라 불렀다. 방적기의 등장은 인류가 청동기 시대부터 사용해온 물레를 박물관으로 들여보냈다.1768년 노팅엄으로 이주한 하그리브스는 두 해 뒤 제니방적기의 특허권을 획득했고, 이 복식수동 방적기는 하그리브스가 죽은 뒤 10년 사이에 영국 전역에 2만 대가 넘게 보급돼 산업혁명의 바탕을 만들어냈다. 하그리브스가 노팅엄으로 이주한 해에 아크라이트는 수차동력(水車動力)을 이용한 자동 방적기를 발명해 워터프레임이라 이름 붙였고, 1779년에는 크롬프턴이 제니 방적기와 워터프레임의 장점을 취해 뮬 방적기를 고안했다. 뮬은 수나귀와 암말의 잡종 곧 노새를 뜻한다. 이 방적기가 제니 방적기와 워터프레임의 잡종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방적기의 발명과 개량은 자본가에게는 축복이었지만 노동자에게는 실직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수동 방적기인 제니 방적기만 사용해도 노동자 한 사람이 방추(紡錘) 여러 개를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수공업적 숙련 노동자들의 일손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게다가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까지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 탓에 영국이 경제 불황에 빠져 고용이 감소했던 터라, 노동자들의 불안은 현실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실업과 생활고의 원인을 방적기 탓으로 돌렸고, 러다이트운동이라고 불리게 될 기계파괴운동에 나섰다. 이 운동이 점화한 곳은, 놀랍지 않게도, 제니 방적기의 원적지인 노팅엄이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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