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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23> 광주민주화운동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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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23> 광주민주화운동의 기억

입력
200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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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재임 중에 있었던 일로 특별히 기억 나는 것 중의 하나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했을 때 내가 직접 적십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현지를 다녀온 일이다. 그 때의 일을 생생하게 알려드리기 위해 당시 나의 일기장에 적혀 있는 내용을 간추려 옮기겠다.5월 24일 (토) 흐림

KBS의 요청으로 '특집좌담'을 한 것이 어젯밤 방영되었다. 출연자는 나와 정진경(鄭晉慶) 목사, 황금찬(黃錦燦) 시인이었다. 지금 온 국민이 걱정하고 전세계가 주목하는 이 불행하고 중대한 사태를 우리 모두 동포애와 애국심으로 화해하고 뜻을 모아 질서를 회복, 더 큰 불행 없이 수습하자는 간절한 호소였다. 오늘 아침 나는 광주를 직접 방문하기로 결심하고 총재의 허락을 받고 계엄사령부에 이 뜻을 전하였더니 처음에는 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꼭 가야 한다고 설득하였다. 석근태 구호국장과 간호사 2명을 대동하고 혈액과 의약품을 앰뷸런스와 혈액수송차량 2대에 싣고 오전 10시에 서울을 떠나 광주로 향했다. 정읍을 지나자 경찰차 한대가 노령터널까지 안내해 주었다. 이곳에서부터 계엄군이 일반차량 왕래를 차단하고 있어 8차례의 검문을 거치고 나서야 광주 시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반시민이 꽤 많이 거리에 나와 있었다. 도청 앞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운집해 있었다.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철모를 쓰고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무장 청년들이 지프차로 우리를 뒤쫓아 왔다. MBC방송국과 세무서, 파출소 등은 불에 탄 채 잔해만 남아 있었다. 적십자 지사에 도착하니 우리 차를 뒤따라 오던 지프차의 청년들이 내가 온 까닭을 물은 뒤 되돌아 갔다. 지사에는 박윤종 지사장과 직원 몇 명이 불안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시민들의 자진 헌혈로 혈액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으나 외과약품과 탈지면(압박붕대) 등은 품절이 되어간다고 우리가 가지고 간 것을 대단히 고마워 했다.

적십자 병원에는 시민 시체 21구가 안치돼있고 23명의 부상자가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다. 환자들을 위로하고 전남대병원을 방문했다. 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에는 32구의 시체가 있고 많은 중상자가 있는데 필요한 산소가 2, 3일분밖에 없다고 걱정하면서 산소 공급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서울로 빨리 돌아가 산소를 보내야 겠다고 생각하고 싣고 간 약품을 모두 인도한 후 서울로 출발했다. 대전쯤 왔을 때 폭우가 쏟아져 밤 11시경 유성의 '홍인장'이라는 여관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새벽에 떠나기로 했다.

5월 25일 (일) 맑음

10시30분쯤에 적십자 본사에 도착했더니 돌아오는 대로 중앙청 정무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전화가 수차례 걸려왔다고 했다. 곧 회의장인 경제기획원 차관실로 달려갔다. 각 부처 차관과 정보부 차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광주 현지 사정을 다음 몇 가지 점을 강조해 설명했다.

"광주 시내는 지금 격노한 학생, 청년, 시민들의 관장 하에 있으며 그들은 무기를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흥분해 있으니 인내와 화해의 자세로 진정시켜야 할 것이다. 다시 정면으로 무력충돌이 난다면 쌍방에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뿐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도 피해를 볼 것이다. 군도 우리의 군이요, 시민도 우리의 동포이니 총검으로 사생결판을 내지말고 어떻게 하든지 화해와 관용으로 수습한 뒤 원인과 책임을 따져 해결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산소이니 충분히 확보해 필요로 하는 각 병원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추기> 나의 이러한 건의에 대해 참석자 전원이 수긍하고 찬동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정부 당국은 필요로 하는 산소를 광주 교외에 있는 군 통합병원으로 급송한 뒤 시내에 공급했다. 당시 손수익(孫守益) 내무차관과 나도헌(羅燾憲) 보사부차관이 적극 협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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