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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민노당이 불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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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민노당이 불편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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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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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스개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불편한 3대 집단이 있는데 첫번째는 경찰이다. 그동안 핵심 당원들을 쫓아다녔는데, 이제는 불려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재벌총수가 군림하고 있는 재계. 마지막은 뜻밖에도 폐지 대상이 된 서울대이다."재계는 진짜다. 경제부처와 부처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수많은 유관기관까지 합하면 경제계 전체가 민노당의 원내 진출과 제3당 급부상에 바싹 긴장하고 있다. 분배가 당의 존립 근거인 민노당은 진보적 민중적 색채가 강해 기존의 경제 정책들과 충돌을 빚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인사들은 연일 "총선결과와 관계없이 종전의 경제정책 기조는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갈 것"(이헌재 경제부총리), "총선에서 우리당이 과반을 확보하고 민노당이 원내진출을 했다고 해서 정부 정책이 왼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라고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안 되고 사회가 시끄럽고 이념적 대립이 강화하면서, 성장의 동력이나 여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김문수 한나라당 의원)는 쪽에 재계는 심증을 더 주고 있다.

민노당에 대한 재계의 우려는 뿌리가 깊다. 체질까지 기존 원내 정당과 전혀 달라서다. 민노당이 분배를 통한 질적 성장을 추구한다면 정부와 원내 정당은 양적 성장을 통한 분배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일보와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가 17대 총선 당선자의 이념을 0(보수)에서 2(진보) 사이로 수치화한 결과, 경제분야에서 상당한 간극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0.68과 0.71로 대동소이했으나 민노당은 1.68로 확연히 달랐다.

맛보기를 해보자. 실업 해소 방안으로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일자리 늘리기를 제시하지만 민노당은 주5일제를 의무화해 일자리를 나누자고 주장한다.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선 민노당은 채무상환 능력이 없는 빈곤층이나 미성년자는 원금을 탕감해주자는 쪽이다. 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무상 교육, 무상 의료 공약도 예산 제약 때문에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민노당의 정강정책은 이처럼 IMF위기 이후 한국 경제계를 석권한 신자유주의와 전혀 감각이 다르다.

민노당의 분배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40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공약의 전면 실시는 불가능하지만 민노당은 엄청난 국방비를 복지비로 돌리고, 부유세 신설 등 세제개혁을 통해 세수를 늘리면 상당 부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재계와 민노당은 태생적인 대립각을 품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다가올 춘투부터 걱정이다. 하지만 암담하지만 않다. 오히려 유럽처럼 좌우가 공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가능할 수도 있다.

민노당이 이번 총선과 2002년 대선에서 사용해 큰 인기를 끌었던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은 알고 보면 수입품이다. '말짱'으로 떠오른 민노당 노회찬 총장의 '어록'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사실은 브라질 노동당이 룰라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2년전 대선에서 활용한 핵심 슬로건이다. 노 총장의 사무실에는 룰라 대통령의 사진까지 걸려있다. 룰라는 다 알다시피 집권후 노선을 버리고 실리를 추구하면서 남미병에 지친 브라질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룰라 벤치마킹이 2012년 집권을 공언한 민노당이 현실적 진보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김경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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