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화 제1기는 흔히 '3김 시대' 또는 '87년 체제'로 불린다. 3김 시대에 민주적 경쟁이 회복되었고, 35년 만에 지방자치가 재개되었으며,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가 신장되었다. 그러나 분열적 지역주의, 색깔론으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적 편협성, 사당적 보스 정당, 정치적 부패의 온존으로 3김 시대 말기에 한국 민주주의는 대표성, 책임성, 투명성을 갖추지 못한 채 공고화된 민주주의로 가는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3김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 2기가 시작되리라고 기대하였다. 그러나 국회를 장악하고 있던 지역주의와 색깔론으로 무장한 부패한 기득권 세력은 정치의 세대 교체, 탈지역주의, 투명화를 위한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침내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민주적 헌정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합법적 의회 쿠데타를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17대 총선에서 한국 국민은 위기에 강한 저력을 발휘하여 민주화의 성과를 되돌리려는 역류를 막았고, 한국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먼저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의회 과반수 획득으로 대통령제의 정상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반복되어 왔던 여소야대 국회는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견제를 넘어서 대통령의 개혁 정책을 저지하고 정국 불안을 야기하는 역기능을 수행해 왔다. 17대 총선으로 여소야대로 인한 개혁 장벽은 무너지고 정부와 여당은 소신을 가지고 공약했던 개혁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국민들은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야당에게도 줌으로써 정부와 여당의 과속을 막고 국회가 정상적인 견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였다.
둘째, 열린우리당의 전국 정당화,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으로 지역주의 정당은 앞으로 설 곳이 없게 되었다. 물론 영남 지역에서는 여전히 지역주의 바람이 드센 것으로 나타났지만 한나라당은 지역주의 전략을 계속 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이 계속 영남 지역주의에 호소한다면 전국적으로는 소수당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당 구조는 사실상 해체되었고 이것이 17대 총선의 가장 큰 성과이다.
셋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산업화된 국가에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는 오명을 씻을 수 있게 되었고 한국 정치의 이데올로기적 지평이 넓어졌다. 이제 한국 정치도 좌우 양 날개 하에서 중도개혁 세력이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적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넷째, 정치 신인이 의원의 절반 이상을 점하게 됨으로써 '정치인 교체 없는 정권 교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이어 전후 세대가 의회를 이끄는 주역이 됨으로써 명실상부한 권력의 세대 교체가 완료되었다. 참여(participation), 열정(passion), 능력(potential power)을 가진 젊은 P 세대의 부상과 전체 의석 수의 13%에 달하는 여성 정치인의 원내 진입으로 한국 정치의 시간도 마침내 연성 정치, 청정 정치, 대화와 타협의 정치, 포용적 상생 정치, 개방적 참여 정치를 특징으로 하는 21세기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17대 총선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3김 시대에 고착화된 낡은 정치구조를 허물어뜨린 '중대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정계 은퇴 선언은 3김 시대의 퇴장을 알리는 마지막 에피소드였다. 이제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운영자가 모두 바뀌었고 이들이 주도하는 한국 민주화 제2기가 열릴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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