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 우선 여행을 가고 싶다. 하늘과 호수 들판을 달려, 파도가 흰 구름을 품는 곳으로. 지금 여기보다 그 어디엔가로.('여기보다 어딘가에')초콜릿도 먹고 싶다. 부드러운 밀크초콜릿, 치약맛 민트 초콜릿, 브랜디를 품고 있는 엉큼한 초콜릿까지.('초콜릿 이야기')
우울한 낭만에 사로 잡혀 봄 햇살이 따사롭게 쏟아져 들어오는 시내의 어느 창 큰 찻집에 앉아 하염없이 거리 풍경을 바라보고 싶기도 하다.('지난봄 어느 날')
윤종신의 '배웅' '잘했어요', 박정현의 '몽중인' 등 수 많은 히트곡을 쏟아 내며 차세대 대표 뮤지션으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수 겸 작곡가 하림(26·본명 최현우)이 두번째 음반 'Whistle In A Maze'를 발표했다. 河琳. 바다(河)와 수풀(林)의 왕(王)이 되고 싶다는 의미의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였을 만큼 자유를 갈망하는 이 젊은 음악가의 노래는 그의 마음 속 울림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듣는 이가 갖가지 욕구에 사로잡히는 이유도 그 솔직함 때문인 듯하다. 노래를 만들고 부를 때 그가 가졌던 생각이나 소망은 듣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그래도 '원해 원해 원해 원해 원∼해…' 5번에 걸쳐 이별을 아쉬움에 울부짖는 환상적인 후렴구가 인상적인 '출국'으로 대표되는 전작의 흑인음악 성향과는 180도 다른 그의 새 노래가 의아한 건 사실이다. "작년에야 운전면허를 땄어요. 좋아하는 흑인음악 CD를 잔뜩 틀어놓고 드라이브 하는 재미에 빠진 거죠. 그런데 그 음악들에 어느 순간 귀가 피곤하더라구요."
귀가 불편하지 않은 음악. 그것이 새 음반의 모토였다. 그래서 어떤 참고서도 없고 '음악은 이래야 한다'는 편견도 없이 자유롭고 편하게 그만의 음악을 만들어 냈다. 틴 휘슬, 로우 휘슬, 하프, 오르간, 피들, 아코디언 등 쉽게 사용하지 않는 이국적인 악기소리가 묘한 조화 속에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다소 투박하지만 어쿠스틱한 느낌이 따뜻하다.
지난해 여름 다녀 온 아일랜드 여행의 영향이 컸다. 길거리 음악가들에게서 아일랜드 휘슬 부는 법을 배우고, 마음에 드는 악기는 직접 장인을 찾아가 구입한 후 혼자 연습했다. 거리와 펍에서 연주하는 자존심 강한 뮤지션들에게서 받은 깊은 인상도 빼 놓을 수 없다. "처음부터 이국적인 분위기를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우연히 다녀 온 여행을 전후한 음악적인 변화가 퍼즐처럼 하나하나 맞춰진 결과죠."
새로운 악기를 쉽게 배우고, 또 새로운 음악에 쉽게 자극받는 것도 어쩌면 그의 열린 자세 때문인 듯 하다. 자기만의 성에 갇혀 자아도취용 음악만 만들어 내는 다른 젊은 뮤지션들과 달라 보인다. "들을 음악이 없다고 해요. 하지만 정말 좋은 음악도 많고, 음악가들은 열심히 공부해요. 그런데도 음악이 없다는 건 다들 자기 만족을 위한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김광석의 노래처럼 듣는 사람이 행복한 음악, 괜히 멋 부리지 않고 거리에서 까페에서 호프집에서도 들을 수 있는 그런 음악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거 느껴요."
그는 광화문 거리나 직장인들이 오가는 빌딩 숲 사이에서 여는 길거리 공연을 언제나 꿈꾼다. 자유로움과 책임감 사이에서 듬직하게 균형잡고 있는 그런 그의 모습이 좋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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