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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1> 소설 "광장"의 이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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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50주년 기획시리즈 우리시대 주인공]<1> 소설 "광장"의 이명준

입력
200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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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들의 웃음과 눈물, 분노와 절망은 우리 자신의 것이기도 했습니다. 분단 반세기를 살아온 우리의 모습과 시대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문화·예술 속의 주인공들. 그들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부터 50년의 역사를 함께 해온 한국일보가 그들을 다시 찾아갑니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달라지지 않은 것들 중 위로가 되는 것은 바다 뿐이다. 반세기의 역사가 무엇을 바꾸었는가. 51년 전 인도로 가는 배 위에 있던 이명준(李明俊). "동무는 어느 쪽으로 가겠소?"라는 질문에 "중립국"이라고 고집한 석방포로에게 같은 물음을 던진다. 그럼 그의 대답은?

철학과 3학년인 명준은 월북한 아버지를 두었다는 이유로 빨갱이로 몰려야 했다. 윤애와의 사랑도 부질없었다.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 한국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꽃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그래서 찾아간 아버지의 조국 북한. 그러나 그가 본 것은 '혁명이 아니라 혁명의 흉내였다.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소문뿐이었다.' 혁명과 시대의 꿈에서 오히려 먼, 은혜에게서 은총을 보았으나 그 사랑은 너무 짧았다. 명준은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소비에트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나랍니까? 월북한 이래 일반 소시민이나 노동자 농민들까지도 어떤 생활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그들은 끌려 다닙니다. 그들은 앵무새처럼 구호를 외칠 뿐입니다."

남과 북의 절망을 짊어지고 마카오 근처 바다에 몸을 던진 명준. 그때 그는 죽지 않았다. 지나가던 배에 구조돼, 여든의 나이로 고국을 다시 찾았다. 이 가정(假定)에 대해 작가 최인훈씨는 "상징적으로는 백골이 2004년 현재의 이명준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백골은 최씨가 2003년 발표한 단편소설 '바다의 편지'의 화자(話者)다. 북에서 내려온 특공대 말단병사 출신 젊은이인 그를 작가는 "이명준과 같은 지식인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는 이명준의 자유로운 회의정신에 혈연이 닿는 사람"이라고 했다.

'광장' 이후 43년 만에 돌아온 백골의 사유(思惟)는 이명준의 부르짖음에 다름 아니다. "잘난 사람들은 우주의 바다를 막강한 무쇠배를 타고 사람이 그리로 옮아가서 살 수도 있을지 모르는 별을 찾아서, 백주에 드러내 놓고 온 세상에 알리면서 탐험의 뱃길을 열어놓고 있는 이 희한한 세월에, 왜 우리는 이 조그만 우리나라의 연해를 그나마 휴전선으로 꼴사납게 잘라놓고는" 살아야 하나.

백골은 고통스럽게 외친다. "도둑놈들은 간사스런 말과 피 묻은 칼이 망보아주는 검은 침대에서 살찐 잠을 잔다. 높은 담 안에서 이국종 맹견은 정치 깡패처럼 충실하게 순라를 돈다. 돈 없고 무식하다고 덮어 누르는 거짓말의 덩어리. 거짓말의 꽃동산. 썩은 거름보다도 추한 독초를 키우기 위해서 세상은 미쳐야 한다." 백골의 눈에, 혹은 50년 뒤 이명준의 눈에 비친 남한의 '광장'이다. 그 '광장'은 한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55년 전처럼 명준은 북한으로 간다. 그러나 2000년대에 남으로 내려온 백골은 그가 떠나기 전, 그곳에 대해 이렇게 속삭인다. "존경하는 지도자들이 틀림없이 책임있는 판단을 하고 병사들은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요." 어디서 들어본 말이다. 아! 50여년 전 내가 아버지 앞에서 절규하듯 외치던 바로 그것이 아닌가. "일이면 일마다 저는 느꼈습니다. 제가 주인공이 아니고 '당'이 주인공이란 걸. '당'이 생각하고 흥분하고 느끼고 한숨지을 테니, 너희들은 복창만 하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2004년 지금, 명준은 어디로 갈꺼나. 작가 최인훈씨는 얘기 하나를 들려줬다. "그때 이명준처럼 중립국을 선택했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어떤 사상적인 깊이를 갖고 중립국을 택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그 이후로 생애가 다 끝나도록 남과 북, 어느 쪽이든 새롭게 선택했다는 소식을 듣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았다는 것. 이것이 '이명준이 살아있다면'이라는 가정에 대한 대답의 힌트가 되지 않을까."

이명준은 곱사등이었다. "등에도 혹이 있고 가슴에도 혹이 있는". 하나는 '이데올로기'요,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안팎의 혹의 무게가 그를 괴롭혔다. 최인훈씨의 말처럼 "혹을 떼어놓으면 곱사등이는 죽는다." 51년이 지나도 결국 그 두 개의 혹을 떼지 못한 채 다시 중립국인 자신의 새로운 조국으로 가는 명준. 그 배위에서 그는 다시 죽은 옛사랑 은혜와 그녀의 뱃속 아이를 만났다. 어미 새와 함께 바다 위를 나는 꼬마 새. 구원은 결국 저 푸르고 넓은 광장에 있었다. 명준은 늙고 지친 몸을 다시 바다로 던졌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이명준

1925년(또는 1926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하얼빈, 옌지 등에서 소년시절을 보내고 해방되던 해에 서울로 왔다.

아버지는 8·15 직후 북으로 가고, 어머니는 몇 달 뒤 죽었다.

대학 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7년 여름 첫 애인 강윤애를 만나지만, 아버지 때문에 두 번이나 경찰서에 불려가고 결국 1949년 7월 월북을 감행했다.

1950년 이른 봄 북한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다가 두 번째 애인 은혜를 만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 보위부원 신분으로 다시 서울로 내려왔다.

그 해 겨울 낙동강 전선에서 포로로 잡혔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되고, 포로수용소를 나온 후 중립국 행을 희망했다.

인도로 가는 배가 남중국해를 지날 무렵, '푸른 광장' 바다 속으로 투신했다.

■그때 한국일보에는/"소설 "광장" 조국의 비극 증언"

1960년 12월19일, 한국일보는 평론가 유종호씨의 기고문'1960年 면고(面顧)―문단(文壇)'을 통해 소설 '광장'의 등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4·19 이전의 문학부문에 있어서 작가의 자유가 전혀 용납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태를 과장하는 언설(言說)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당한 '맥카시즘'의 구사(驅使) 아래서 조성된 공포의 분위기가 부단히 작가의 자유를 위협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집권층의 감시 눈초리가 채 미치지 못했던 문단이라고 하는 으슥한 뒷골목에도, 그러나 혁명(4·19 혁명)의 여덕(餘德)으로 대담한 현실폭로의 경향과 함께 작가의 자유가 한결 보장되어 있는 듯한 감을 풍기는 것은 기꺼운 현실이었다. 중편물로는 '조국의 비극적 정황에 대한 침통한 증언을 시도한' 최인훈씨의 '광장' 등은 이 부류에 속하는 작품들이었다."

■ 분단예술속의 주인공들

분단이라는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우리 분단문학과 예술이 만들어낸 주인공들에게도 무겁고 우울한 짐이다. 그들에게는 분단으로 인한 상처와 고뇌의 흔적이 어떤 식으로든 배여 있었다. 어느 한쪽의 이념에 기울어지지 않은 같은 무게로 남과 북을 짊어진 이명준처럼.

황석영의 '한씨연대기'(1972년)에서 북쪽 의사 한영덕은 군인 치료에 앞서 민간인의 위급한 수술에 나섰다가 비판 받는다.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해서는 무면허 의사들과 동업하다 죄를 뒤집어쓰고 간첩혐의까지 받아 고문 당한다. 그 역시 남과 북을 모두 체험했지만, 어느 쪽에도 기댈 수 없었던 인물이다. 휴머니즘을 짓밟는, 다분히 폭력 독재통치의 수단으로서의 남북 분단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이런 비극적 주인공은 2002년 개봉한 영화 '이중간첩'의 임병호(한석규)가 그렇듯 세월이 흘러도 이명준의 잔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윤흥길의 '장마'(1973년)에서 화자(話者)는 국군 소위를 아들로 둔 외할머니와 인민군 빨치산을 아들로 둔 친할머니의 긴장과 갈등을 지켜본다. '나'는 어린 소년이지만 역시 어느 한쪽이 지고 이기는 것이 아닌, 남과 북 모두의 아픔을 간접 체험한다.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1984년)에서 '나'의 아버지는 월북한 공산주의자다. 언제나 '아버지의 죄를 떠 짊어진' 것 같았던 '나'는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전쟁 중 학살당한 시신을 발굴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 겪은 폭력을 헤아리고 고통스러워 한다. 박상연의 'DMZ'(1997년)에서 아버지는 이명준처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중립국을 택해 브라질에 정착한다. 투철한 이념을 가진 인민군이었던 그가 수용소에서 이념대립으로 인한 다툼 끝에 국군인 동생을 죽이면서 조국과 자기 환멸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난 후 중립국 장교로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일어난 남북 병사의 총기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아들. 2000년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를 소피 장(이영애)이란 여자 소령으로 바꾸었다. 역할도, 정체성에 대한 우울한 독백도 줄였지만, 세대를 넘어서도 벗지 못한 '분단의 그늘'은 여전히 짙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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