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년 전 이맘때, 좌우 이념과 세력이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유럽 사회의 합리성에 관한 글을 몇 차례 썼다. 유력한 여당 후보를 좌파라고 매도하는 낡은 색깔 시비와 관련, 우리 사회도 지독한 좌파 알레르기를 스스로 치유할 때라고 지적했다. 무지한 정치권과 편향된 언론 및 학계까지 보수와 진보, 우와 좌를 곧장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은 사회를 몽매한 시절로 되돌리는 행태로 본 것이다. 국민 의식과 이념적 지평이 변하는 대세에 따라, 좌와 우를 아우르는 건전한 대안 경쟁을 할 것을 강조했다.■ 그 유력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좌 편향 우려가 있었으나 오히려 반대로 보았다. 확고한 이념 기반과 정책 프로그램이 없는 형편에 안팎의 장애에 직면하면 쉽게 좌우로 흔들리다가 스스로 주저앉을 것이 걱정됐다. 그 과정에서 민심이 다시 보수로 기울고, 지지계층도 이반(離反)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결과에 대한 인식은 대통령에 대한 호오(好惡)에 따라 엇갈리지만, 여론조사에 나타난 평가는 극히 부정적이었다. 무엇보다 대통령 자신이 주저앉을 듯한 모습을 보였다.
■ 그 뒤 대선자금 수사와 탄핵 사태를 거쳐 총선 승리에 이른 드라마틱한 반전(反轉)은 새삼 언급할 필요 없다. 여기서 지적하려는 것은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자신들이 이룬 반전 드라마에 자못 도취한 듯, 과거 보수세력의 색깔론을 그대로 닮은 새로운 좌우 선악 구분에 몰두하는 행태다. 개혁이란 보편적 개념을 임의로 경계로 삼아, 자신들이 속한 진보와 좌파는 절대 선이고 야당이 속한 보수와 우파는 절대 악인 양 몰아붙이고 있는 것이다. 선거전에서 이른바 차떼기와 탄핵세력을 악의 상징으로 선전한 것은 이해한다 하더라도, 선거 뒤에도 같은 구호를 외치는 데는 공감할 수 없다.
■ 이미 지적했듯이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진보와 좌파의 이상을 실천한 게 별로 없다. 역량을 과시한 게 있다면, 수십 년 전 독재와 친일까지 상징으로 동원해 승리한 것이다. 문제는 여러 상징이 난무하는 혼란된 상황에서 유권자들까지 선악 구분에 휘말리게 한 점이다. 정치세력뿐 아니라 유권자 자신도 선악의 경계에 불안하게 걸친 처지로 느끼게 한 것이다. 야당 지지 유권자를 오로지 지역주의에 이끌려 악을 선택한 무리로 매도하는 데 언론과 학계까지 가세하는 것은 그래서 우려할 일이다. 좌파를 악으로 몰던 사회가 불과 2년 만에 근본부터 바뀐 것으로 믿는다면 착각이다. 유럽 사회의 교훈도 유권자의 좌우 선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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