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그 시절의 전기 사기꾼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그 시절의 전기 사기꾼들

입력
2004.04.21 00:00
0 0

내 고향은 전기가 참 늦게 들어왔다. 그런데 마을에서 몇 집이 잠시 전기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새마을 운동으로 초가집들이 모두 함석 지붕이거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을 때였다. 그러니까 우리 마을이 갑자기 잘 사는 마을처럼 보였다. 그런 마을에 '전기 사기꾼'이 들어왔다. 집집마다 쌀 몇 가마니만 내면 '전기세도 내지 않는 전기'를 넣어주겠다고 했다.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서울에서 딸이 사서 보낸 전기밥솥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다른 말보다 '전기세도 내지 않는 전기'라는 말에 사람들이 혹했다. 그들은 집집마다 쌀을 걷어갔고, 쌀을 낸 집에 작은 발전기 하나씩을 달아 주었다. 그런데 열흘도 가지 않아 마을의 모든 발전기가 멈추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사제 불량품이라는 걸 알았다. 후에 정식으로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얘기하며 사기를 당한 것보다, 그렇게 한번 전깃불을 켰던 방에 다시 등잔과 남포를 켜는 일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어디에서나 잘난척하고 싶어 그것을 '문명의 마약성'이라고, 나름대로 배운 티를 내서 말하다가 형으로부터 '허저(조조의 부하로 대장장이 출신이어서 학식이 별로 없는 인물)의 학문'이란 조롱을 받았다.

이순원/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