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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경기 광주 남한산성 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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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경기 광주 남한산성 봄숲

입력
2004.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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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동남쪽으로 약 24㎞ 떨어진 곳에 남한산성이 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요충지로 기능해 온 곳으로,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산성 안에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을 모신 사당 '숭열전(崇烈殿)'이 자리 잡고 있다.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이곳은 국방의 보루로서 그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6대 임금인 인조는 남한산성의 축성과 몽진, 항전이라는 역사의 회오리를 이곳 산성에서 맞고 보낸 바 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5일간 이곳에 머물면서 항전하던 중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삼전도(三田渡) 수항단(受降檀)에 나아가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하는 치욕의 역사가 있었지만 한번도 함락 당한 적은 없다.

남한산성은 청량산(497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연주봉(467.6m), 동쪽으로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약 11㎞에 달하는 장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토성(土城)으로 축성하였던 것을 조선 광해군 13년(1621년)에 석성(石城)으로 개축하기 시작하였고 인조 2년(1624)부터 2년 동안 다시 공사하여 오늘에 이른다. 산성 내에는 행궁(行宮)을 비롯한 침괘정, 연무관(演武館), 지수당 등이 들어서 있다.

산성 내부는 해발 약 350m 의 분지로,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다 하여 일장성(日長城)이라고도 한다. 인접한 도시보다 연평균 기온은 약 4도 정도 낮아 1∼2주 늦게 봄이 온다. 행궁과 인가 근처의 300여 년 된 느티나무 노거수 몇 그루를 제외하곤 약 70㏊에 달하는 숲 대부분이 소나무로 에워싸여 있는데, 대개 70∼90년생의 노거수로 구성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국유림이었던 이 소나무 숲은 마을 주민 303인이 공동으로 동유림을 불하받아 '금림조합'을 만들어 순산원을 두고 도벌을 막아 보호한 덕택에 살아남은 특별한 유산이다. 행궁 바로 아래에 '산성리 금림조합장 불망비'가 남아있어 선조들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새로 짓고 있는 행궁 주위는 밭으로 바뀌어 있는데 벚나무의 화사한 꽃이 절정이고 느티나무의 새싹이 단풍처럼 물들어 있으며 귀룽나무는 벌써 초록빛 잎을 팔랑거리고 있다. 그 너머 살아있는 유산인 소나무 숲을 휘젓고 다니며 감상하다 서장대에 오르니 위풍당당한 수어장대(守禦將臺)가 서있다. 그 앞에 '매바위'가 있어 축성 중 억울하게 참수 당한 이회(李晦)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조인(鳥人)들의 안식처인 서문(西門)으로 향하는 길은 소나무와 성곽의 오묘한 굴곡이 수평과 수직으로 어우러져 발걸음을 즐겁게 한다.

북장대 터에 올라 연주봉옹성 쪽을 바라보니 산성 밖은 참나무 숲이다. 신록으로 물들은 신갈나무 사이사이엔 굴참나무, 서어나무, 산벚나무, 물박달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들이 섞여 있다. 계곡부에는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서문가는 계곡 길에는 '효자정'이란 약수터가 있다. 정남이라는 열두살난 아이가 와병 중인 아버지의 병을 낳게 하려고 잉어를 찾아 헤매다가 이 우물을 지나는데 금비늘 잉어가 있어 잡아다 고아드렸더니 병환이 나았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곳이다.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해 가족 모두 효자 물 한잔씩 들이킨다.

임주훈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forefir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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