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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춘추]요즘 도토리만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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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춘추]요즘 도토리만 보면…

입력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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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리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 도토리묵이 점심 밑반찬으로 나왔을 때 일이다. "앗! 도토리묵이다. 요즘 도토리만 보면 돈으로 보인다니까 큰일이야. 폐인 다 됐어."다들 도토리가 돈으로 보이는지 도토리묵부터 젓가락질이다. 잠깐동안 도토리 얘기로 밥알이 튄다. "요새 하루 도토리 판매량이 1억원이래요." 갑자기 홍 부장이 수저를 탁 내려놓더니, 통 터진 목소리로 거든다. "에이, 화랑 그만두고 나도 도토리묵 장사나 해야겠다. 뭔 도토리 값이 그렇게 올랐대? 도토리가 아니라 금토리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모두들 박장대소. 의외의 반응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홍 부장의 얼굴이 조금씩 벌개진다.

가입자수 600만을 넘었다는 '싸이월드'가 20, 30대 사이에서 열풍이다. 1인용 인터넷 미니홈페이지인 블로그의 일종인 싸이월드에 빠져 출근하자마자 그사이 접속자가 얼마나 됐는지 '싸이질' 먼저 하는 직장인부터, 남편은 먼저 재우고 '파도타기'와 '퍼나르기'로 밤을 지새는 아내, 강의 중간 짬짬이 '1촌'들의 근황을 살피러 들락날락하는 대학생까지 '싸이 폐인'이 부지기수다.

덕분에 미니홈피를 꾸미기 위한 사이버머니인 도토리를 사는 데 한 해 수 백억원이 든다고 한다. 싸이월드는 인맥을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와 디카, 폰카의 대중화가 맞아 떨어지면서 최근 폭발적 인기를 얻으며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노출하기'와 '훔쳐보기'라는 억눌린 욕망의 자극이 열풍과 중독성의 요인이 된다.

사생활이 고스란히 노출되거나, 홈피에 돌아다니는 과거의 흔적 때문에 헤어지는 연인이 속출하는 웃지 못할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싸이에 한참 열중인 나도 옛날 애인의 홈피가 있는지 검색해본 뒤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몰래 들어가 본다.

'아니 나도 스토커의 기질이?'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흠칫 놀란다.

/윤태건 카이스갤러리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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