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유행하는 것이 괴기영화이다.그 중 유치하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이 홍콩의 강시(쌲屍)영화이다. 두 팔을 뻗어 앞으로 나란히 자세를 하고 두 다리를 붙인 채 깡충깡충 뛰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강시는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 특유의 자세로 주인공을 향해 깡충깡충 뛰어와 보는 이들을 오싹하게 만든다.
한국 정치에서 강시를 들라면 단연 김종필 자민련 총재였다.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 징그럽게 쫓아오는 강시처럼 김 총재는 43년 전에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살아 남아 왔다. 사실 김 총재의 정치생명은 당시로는 천문학적 숫자인 백억원대의 부정축재가 밝혀져 정계를 떠나야 했던 1980년 봄에 끝났어야 옳다. 부정축재도 축재지만 박정희 정권과 김 총재가 대변하는 개발독재의 논리는 전두환과 신군부가 계승해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80년 봄에 그의 역사적 소명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나 망국적인 지역주의와 민주화운동 진영의 양김, 즉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열은 김 총재의 정치수명을 현재까지 연장시켜 줬다. 원래 한국의 지역주의는 대구·경북의 패권적 지역주의가 중심에 놓여 있고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으로 상징되는 부산·경남과 호남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민주화운동을 통해 이에 저항해 왔다. 그런데 87년 민주화와 함께 충청권까지 "우리라고 가만 있을 수 있느냐"는 모방적 지역주의에 나서 그를 살려냈다.
또 양김이 분열해 싸우면서 김 총재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3당 통합과 DJP연합 등을 통해 정치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도 갈 길이 남아 있다"느니 "서산을 붉게 물들이겠다"느니 하며 건재함을 과시하던 그도 결국 이번 총선에서 몰락하고 말았다. 한국정치사상 최초의 10선 달성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겠다던 기염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이번 총선의 중요한 결과는 김 총재의 자민련, 그리고 민주당이라는 3김의 손때가 묻은 두 정당이 참패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대신 부상한 것은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이다. 이번 총선은 초경합 지역이 많아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지만 특히 최후의 순간까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 것은 299명의 국회의원 중 마지막 비례대표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경합한 김 총재와 민주노동당의 노회찬 당선자 중 누가 국회에 입성하느냐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승자는 노회찬 당선자였다. 43년 만에 진보정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으니 붉은 악마가 43년 만에 승천했다면 강시는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아니 상징적으로 표현해 붉은 악마가 강시에게 사망선고를 한 것이다.
주목할 것은 60년 4·19혁명과 함께 생겨난 민주적 공간에서 7석의 의석을 가지고 원내에 진출한 진보정당들을 5·16이라는 무력으로 짓밟고 한국정치를 진보정당의 불모지대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김 총재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도약하고 김 총재가 몰락한 것, 특히 마지막 국회의원 자리를 놓고 김 총재와 민주노동당이 다투다가 민주노동당이 승리한 것은 각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아니 이를 넘어 민의에 의해 뽑힌 진보정당을 무력으로 살해한 진보정당 살해 혐의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43년 만에 뒤늦게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총재의 정치적 등극과 함께 그에 의해 진보정당은 사망선고를 받아야 했고, 그로부터 43년 뒤 진보정당의 부활과 함께 김 총재는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아야 했으니 인연치고는 묘한 인연이다.
김 총재는 결국 이번 총선 결과를 수용해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일부에서는 보선을 통한 재기를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더 이상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김 총재에게 박수를 보낸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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