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봉한 한국영화 두 편에는 두 명의 지골로(gigolo), 정감 있는 우리 말로 표현하자면 '제비'가 등장한다. '바람의 전설'(사진)의 이성재는 카바레를 무대로 활동하는 전형적 제비상(像). 우연히 춤의 매력에 휩싸인 그는 처음에는 단지 춤이 좋아서(하지만 춤 출 곳은 그곳밖에 없어서) 카바레를 드나들다가, 파트너에 대한 예의(?) 때문에 몇 번 개인적인(!) 관계를 갖게 되고, 그러다가 도움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돈 몇 푼 챙기다가 경찰서장 마누라까지 손을 뻗치게 된 인물이다. 영화는 그의 춤에 대한 열정을 앞세우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제비적 재능'을 뒤덮을 순 없다.'범죄의 재구성'의 박원상은, 고도로 계산된 거짓말로 몸도 뺏고 돈도 갈취하는 파렴치한. 일단 목표물(돈 좀 있어 보이는 술집 마담)을 정하면, 보험회사 직원 등으로 위장한 후 친근하게 다가가고 결국 살림까지 차리지만, 단물 다 빨아먹었다고 생각하면 버릴 땐 여지 없다. 제비와 사기꾼의 중간 형태? 그쯤 되겠다.
한국영화에서 제비의 뿌리는 꽤나 깊다. 직업적인 제비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1956년 작품 '자유부인'에서 여주인공 선영(교수 사모님)을 꼬시는 젊은 총각 춘호나 댄스홀에서 만난 태석이 바로 그러한 경우. 그들은 가부장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그녀에게 자유연애와 댄스의 달콤함을 가르쳐준다. 이후 한국의 '제비 영화'가 꽃을 피웠던 시기는 1970년대. 이때 수많은 호스티스 영화가 쏟아지는데, 그녀들의 언저리에는 '바람의 전설'의 이성재처럼 매끈하지는 않지만 제비적 존재가 등장했다.
에로 영화의 시기였던 80년대에는 좀더 진지한 시각에서 제비(혹은 남창)를 바라보는 영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신승수 감독의 '장사의 꿈'이 대표적인 영화. 시골에서 상경한 몸 좋은 남자는 막노동부터 차력사까지 이 일 저 일 하며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남창이 된다. 수많은 유한 마담들이 그를 원하고 그에게 매달리는 여자 또한 생기지만, 그는 지나친 '영업'으로 결국 몸을 망치고 작업 중 코피가 터지는 수모마저 겪는다.
또한 80년대에는 영화 속에 기둥서방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매춘'의 마흥식은 수많은 콜걸들을 보호하는 듬직한 아저씨다. 이 시기 독특한 영화는 '신사동 제비'. 제비에게 농락당한 아내의 복수를 위해 남편 또한 제비가 되어 유흥가에 잠입한다는 얘기로서, 박영규 강남길 원미경을 비롯 개그맨 박세민까지 호화 캐스팅이 빛난다.
이후 '게임의 법칙'의 이경영이나 최근에는 '나비'의 김민종까지, 몇몇 제비 캐릭터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비극은 언제나 영화 마지막에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것. 권선징악의 차원일까? '범죄의 재구성'의 박원상 또한 자신이 '후린' 여자에게 기습적으로 비참하게 당한다. 그렇다면 '바람의 전설'의 이성재는 제비로서는 거의 유일한 해피 엔딩의 주인공이다. 춤의 열정이 그를 구원한 걸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교훈은, 제비에게도 허락된 진리인가 보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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