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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폭풍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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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폭풍 속으로

입력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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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딴지처럼 들리겠지만, SBS '폭풍속으로(사진)'는 유전자의 법칙이 지배하는 드라마다. 속된 말로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되는' 세계다. 볼까? 주인공 현준(김석훈)과 현태(김민준)는 가장 우성의 유전자를 가졌다. 현준은 사법시험을 패스한 것으로도 모자라 사법연수원을 뛰쳐나와 대기업에 들어간다. 어찌나 똑똑한지 입사 면접 때부터 회장 병석(김무생)의 마음을 사로잡고, 수많은 공을 세워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다. 그래서 미선(송윤아)이나 진경(유선) 같은 여자들이 일편단심으로 사랑한다.현태는 더하다. 현준은 열심히 공부라도 했다지만, 현태는 모든 것을 타고났다. 싸움실력도 타고났고, 워낙 '좋은 눈빛'을 가지고 있어서 조직폭력배 두목이 키우고 싶어할 정도며, 그 눈빛으로 바라만 봐도 여자들이 따른다. 드라마가 시작된 지 이제 한 달이 됐지만, 이미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네 명, 거의 한 주에 한 명 꼴이다.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폭풍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쟈는 옛날부터 여자가 줄줄 따르는기라." 그들은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거친 포경꾼 아버지(이덕화)와 부자집 출신의 도도한 기품을 가진 어머니(양금석)의 유전자 중 좋은 것만 받은 것이다.

'폭풍속으로'는 그렇게 모든 인물들이 자기의 운명을 이미 타고났다. 여주인공 미선은 워낙 매력적이기 때문에 현준은 물론 대기업 회장의 아들, 지역유지 등이 모두 반하고, 현태를 따라 다니는 수창(성지루)은 변변한 능력없이 오직 현태에 대한 변치않는 우정만을 지닌다. 주인공은 철저하게 주인공의 삶을 가지게 되고, 현태와 수창을 따라 다니는 만수(이찬) 같은 인물은 끝까지 현태와 수창의 말이나 들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폭풍속으로'는 마치 계급사회를 연상할 정도로 주인공은 주인공, 악역, 조력자들이 자기 위치만 지키며 주인공의 삶을 위해 움직인다. 조연은 주인공을 돕거나 괴롭히면 그만이고, 연인사이의 남녀를 제외하면 모든 캐릭터들은 상명하달의 관계에 가깝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연기자의 연기력과 관계없이 마치 뻣뻣한 로봇처럼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 같고, 그만큼 캐릭터의 매력이나 사람간의 풍부한 감정교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폭풍속으로'처럼 액션과 멜로를 섞은 오락물을 지향하는 작품에서 섬세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졌던 '올인'은 달랐다. 그 작품에서 인하(이병헌)는 천재적인 도박사이긴 하나 교도소를 나오고 배운 것도 없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자신의 못난 모습을 인정했다. 인하의 친구였던 형사(최준용)는 조연이었음에도 인하를 도울 때는 착하지만 자신의 생계를 위해 부정도 저지르는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자신이 약점을 잡혀 인하를 배반해야 할 처지가 되자 상당한 갈등에 시달리기도 했다. '올인'의 중심 스토리는 한 남자의 극적인 성공기였지만, 그 배경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캐릭터간의 강렬한 감정적인 부딪침이 있었다. 이를 통해 '올인'은 이런 눈요기 중심의 드라마가 빠지기 쉬운 뻔한 통속성을 벗어날 수 있었다.

혹시 제작진은 '올인'의 성공이유를 잘못 판단한 것 아닐까. 진짜 재미있는 드라마는 더 크고 더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일 텐데 말이다.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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