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아(29) 만큼 삶이 극적인 배우도 드물다. 1994년 미스코리아로 연예계 데뷔, 2002년 3월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 2002년 12월 누드사진 인터넷 공개…. 그로 인한 드라마 캐스팅 취소까지. 연예인 누드사진 열풍의 포문을 열었을 때는 격려보다는 의혹의 시선이 더 많았다. 나이 삼십도 안돼 너무 많은 일을 치렀다. 그녀가 모진 각오로 새롭게 출발한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5월5일 개봉)를 통해서다. 5월12일부터 열리는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 유력시되는 이 작품은 한 여자(성현아)를 사랑한 두 남자(유지태 김태우)의 이야기. '오! 수정' '생활의 발견'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통해 독특한 영상문법을 선보인 홍 감독의 신작으로 벌써부터 큰 관심을 모으는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서 인생의 승부수를 띄웠다"는 성현아를 만났다.
― 영화 포스터가 도발적이다.
"올해 1월 부산 해운대에서 찍은 것이다. 여름 사진이어서 짧은 치마를 입었는데 엄청 추워 고생했다. 복고풍의 원피스를 입는 등 최대한 옛날 사진 느낌이 들도록 했다. 친구가 이름을 불러 뒤를 돌아보게 하고는 '기습적'으로 찍은 사진이다."
―그 동안 힘든 일이 많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했다. 내 마지막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통해 모든 것을 털어버리자고 마음 먹었다. 전에는 한 작품에 바싹 다가가서 일하지 않았고, 주위에서도 연기자로서 의지가 그리 크지 않다는 소리를 많이 했다. 연예계 데뷔 후 10년 동안 지난 4개월이 가장 열심히 일한 시간이다. 다음 영화로 인터뷰를 할 때는 '힘든 일이 많았다'는 식의 질문을 받고 싶지 않다."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주연 배우로서 설명해달라.
"7년 전 선화라는 여성을 사랑한 두 남자의 이야기다. 선후배 사이인 두 남자가 7년 후 다시 만나 낮술을 먹다가 선화를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눈도 오고 낮술도 먹었으니 옛 여자가 생각도 날 법한 일 아닌가. 어디서나 흔히 있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의 한 부분이다. 기승전결이나 이야기보다는 상황과 대사, 분위기와 이미지가 중요한 영화다. 홍상수 감독의 마니아라면 어떤 영화일지 감이 올 것이다."
―극중 선화는 어떤 여성인가.
"순진하고 가난한 미대생이었다가 대학을 중퇴하고 부천의 한 호텔 바를 운영하는 30세쯤의 여성이다. 첫사랑의 두 남자가 동시에 찾아오니까 만날까, 말까 고민하다가 궁금하니까 어디 한번 만나나 볼까 결심하는 다소 장난기가 있는 여성이다."
―야한 장면이 제법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누드사진 사건도 있으니 주위의 이런 시선이 좀 부담스럽지 않았나. 홍 감독이 굳이 성현아씨를 캐스팅한 이유도 궁금하다.(홍 감독의 '생활의 발견'에서 김상경과 예지원의 베드신은 대단했다.)
"물론 나온다. 그러나 극 전개와는 상관없이 뚝 떨어져 돌발적으로 등장하는 섹스 신은 결코 아니다. 누드사진을 찍은 배우로서 이런 장면을 요구 받았을 때,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베드신을 피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언제 좋은 배우가 되겠는가. 창피하지 않았고 피할 생각도 없었다. 영화를 보고 평가해달라.
출연은 홍 감독이 먼저 연락해서 이뤄졌다. 홍 감독과는 98년 '오! 수정'의 오디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때는 나름대로 머리도 치렁치렁 치장하고 신경 써서 갔는데, 홍 감독은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퇴짜를 놓았다. '생활의 발견' 때도 찾아갔지만 안됐다. 이번이 3번째 만남이다. 감독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법이다."
―홍 감독과 같이 작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대표적인 게 홍 감독 특유의 '원 신 원 컷(One Scene One Cut)' 촬영이다. 카메라를 거의 고정시킨 채 컷 없이 한 신을 완성시키려면 배우들이 큰 고생을 할 것은 뻔한 이치다)
"리얼리티를 위해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는 진짜로 술을 마셨다. 홍 감독 지론이 '영화는 허구지만 90분 동안만큼은 진실'이라는 것이다. 얼굴이 벌개지고 대사를 씹었는데 오히려 OK 사인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아침에 자다가 일어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촬영장에서 자야 했다. 말도 못하게 했다. 그래야 아침에 일어나 목이 잠긴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배우라도 홍 감독 등쌀에 밀리면 좋은 배우로 거듭날 것 같다. 김상경 선배는 홍 감독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차기작도 이미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
"5월초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변혁 감독의 '주홍글씨'다. 스릴러에다 멜로를 섞은 것인데 한석규 선배와 처음 같이 연기하는 작품이다. 연이어 일을 할 수 있어 좋다. 이제야 비로소 배우의 길을 들어선 느낌이다. 설령 '여자는…'이 칸영화제에 진출을 못하거나, 수상을 못하더라도 상관없다. 상을 받더라도 그것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좋은 배우와 좋은 감독을 만나 열심히 일한 것만으로 행복하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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