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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14> 3부 변화하는 정치·국가전략 ② 2003년 체제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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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다시본다]<14> 3부 변화하는 정치·국가전략 ② 2003년 체제의 출발?

입력
2004.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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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9일에 치러진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10석을 잃어 237석, 민주당은 무려 50석을 늘려 177석을 차지했다. 반면, 사민당 공산당 등 혁신 야당들은 각각 6석, 9석으로 참패하면서 일본에서 보수양당제가 등장하고 있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보수세력인 자민당이 일당 우위를 유지하면서도 혁신세력인 사회당의 견제를 받던 '1955년 체제'와 비교하면 혁신 정치세력의 쇠퇴가 눈에 띄게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의 일본 정계재편을 회고해보면, 혁신세력이 약화되고 정계 전반의 보수화가 진행되면서 보혁 갈등 중심의 일본정치가 보수세력간의 경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993년 55년 체제의 붕괴 이래 10년간 표류하던 일본정치가 '2003년 체제'라고 불리는 보수양당제로 정박할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정당간의 대립으로 대표되던 한국정치가 4·15총선에 의해 보혁 갈등구조로 이행해 가고 있는 점과 비교하면 아주 대조적이다.

일본정치에서 보수정당의 약진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민당의 약진때문이라기 보다는 변화를 거부하고 자기혁신을 외면한 혁신세력의 경직화가 낳은 산물이다.

우선 사회당 등 혁신정당들은 90년대의 급격한 사회 변동을 직시하지 못하고 옛날의 질서만을 지키려는 구태의연함을 버리지 못했다. 이념은 혁신이라도 정치 자세면에서는 예전의 질서를 지키려는 사실상의 수구정당이었다. 냉전이 끝났는데도 사회주의의 고수를 내세웠고, 일본경제의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하려 하였다.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져도 그에 걸맞는 국제적인 공헌을 원칙적으로 거부했다. 이로 인해 도시중산층은 점점 사회당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자민당과 연립을 구성하면서 수상이 된 사회당 당수 무라야마가 반자민, 호헌, 미일동맹 반대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하루 아침에 부정해버린 것은 결정적이었다.

냉전후 미일동맹을 강화하려는 자민당의 움직임에 사회당이 동조하면서 자기 색깔이 없어진 것이다. '적과의 동침'을 통해 허물어져 내린 것은 자민당이 아니라 사회당이었다.

90년대 정치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입된 소선거구제는 사회당과 공산당 등 소수야당을 더욱 약화시켰다. 중선거구제하에서 줄곧 '2위 정당'이라는 자리에 만족하고, 노조와 반자민층의 지지에 안주해왔던 사회당은 과반수를 얻어야 하는 소선거구제에서 힘없이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현재 제1야당인 일본 민주당은 사회당과 다르다. 1996년 결성된 민주당은 반대정당으로서가 아니라 '대안정당'으로서의 대결자세를 내세우면서 자민당에 도전하고 있다.

1996년 이후 3번의 중의원선거, 2번의 참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다양한 보수세력을 흡수한 민주당은 자민당에 가름할 수 있는 도전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방위안보정책 등 대외정책에서 자민당과 큰 차이가 없는 보수야당이다.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사회당을 대체하면서 도시부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수권야당이 되려하고 있다. 민주당의 권력의지는 지난 중의원 선거에서 300개의 선거구 중 267개 선거구에 후보를 낸 데서 알 수 있다. 전국정당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보수양당제는 정착하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주요정당이 보수화하고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양당제가 정착해 간다는 결론은 아직 섣부르다.

우선, 공명당의 정치적 진로 선택을 유의해 보아야 한다. 자민당은 종교정당인 공명당과의 정치적 동맹을 강화하여 침식되는 지지기반을 메워가고 있다. 공명당의 중의원 34석, 참의원 23석이 없이 자민당은 안정된 국회운영을 할 수 없다. 자민당의 공명당에 대한 선거의존도 심화되고 있다. 공명당이 자민당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소선거구에서 승리한 168명의 자민당 의원 중 42명은 낙선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문제는 자민당은 공명당을 버릴 수 없지만, 공명당은 자신들의 지지모체를 바탕으로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명당이 자민당과 계속 행보를 같이 할 지가 관심을 끄는 변수이다.

민주당은 도시부 무당파층의 지지를 받으며 짧은 기간 내에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11월 선거에서도 민주당 지지자의 35%가 자민당의 승리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을 지지했다고 응답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유가 민주당을 선호해서가 아니라 자민당의 독주를 견제하겠다는 심리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도시부의 유동층 및 무당파층의 지지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서 아직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또한, 일본 국회의 또 다른 축인 참의원에서 민주당의 의석은 아직 66석에 불과하다. 올해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약진한다 하더라도, 민주당이 단독 과반수인 123석을 차지하려면 적어도 2∼3번의 선거를 더 거쳐야 한다.

일본의 정당정치가 1955년 체제에 비해 전반적으로 보수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양당제로 진화하리라는 예측은 아직 시기상조이다. 당분간 공명당과의 연합을 통한 자민당의 상대적인 우위는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3년 체제가 정착되었다고 볼 수 없다.

/박철희 외교안보연구원 조교수

/ 40세 서울대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석사)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저서 "21세기 일본의 국가전략"(시공사) 등

■ "55년 체제"란

일본의 '55년 체제'란 1955년 자민당과 사회당이 구축한 정치운영체제를 말한다.

당시 양대 보수정당으로 갈등과 경쟁 관계에 있었던 자유당과 민주당은 안정을 바라는 기득권층의 요구에 따라 55년 통합, 자민당을 만들었다. 역시 좌우파로 나뉘어 분열양상을 보였던 사회당도 자민당의 출현에 위기감을 느끼며 이 해 당을 하나로 수습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민-사회당'의 2당 체제는 93년 7월까지 38년 동안 지속되며 일본 정치사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러나 55년 체제는 보혁이 겨루는 일반적인 양당체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민당의 압도적인 1당 우위체제 안에 동서냉전 상황을 배경으로 한 사회당이 편승한 형국이라는 것이 좀더 정확한 설명이다.

55년 체제가 붕괴된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었던 다케시타파의 분열이다. 요시다-사토-다나카파를 계승한 다케시타파는 '이중권력구조'로서 총리 후보의 추천과 내각 인사, 각종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한 권력 중에 권력이었다. 그러나 사가와큐빈 사건 등 잇따른 정치 부패 스캔들로 수뇌부가 타격을 받자 파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결국 주류인 오부치파와 개혁색채가 짙은 하타파로 분열됐다.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부치파가 정치개혁 요구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자 하타파는 93년 6월18일 야당이 제출한 미야자와 내각 불신임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말았다. 자민당 1당 지배체제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자민당은 같은 해 7월10일 개최된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에 미달하는 참패를 당했고, 7월29일 비 자민당 정파들이 만든 '호소카와 내각'에 권좌를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55년 체제의 붕괴는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의 경제 침체와 80년대 후반의 냉전 종식 등 국내외 상황에 의해 이미 시작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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